게으른 엄마의 행복한 아이교육

부모와의 관계에도 매듭이 필요하다

제비성냥갑 2019. 7. 7. 05:35

  나의 부모님은 3~4년 전에 은퇴하셨다. 우리 부모님은 또래 친구들의 부모님보다 연세가 많으신 편이다. 삼십대초반에 은퇴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 덕분에 은퇴에 대한 생각을 남들보다 빨리 하게 된 셈이다. 내 친구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들을 들으면 삶에 대해, 노후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내가 30년 후에 삶이 끝난다면 나는 뭐가 아쉬울까라고 말이다. 2~3년 뒤의 미래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요즘에 30년 뒤의 생각을 한다는 걸 어리석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2년 뒤의 일처럼 생생한 공포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30년 뒤의 나는 어떤 게 아쉬울까.

  나의 양가 조부모님은 모두 안계신다. 친할머니와는 8년전까지 함께 지냈지만 그 외 조부모님들은 만나뵌 적이 없다. 나에게는 할머니 할아버지지만 우리 부모님한테는 엄마, 아빠인데 내가 엄마, 아빠를 못 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봤다. 매일 무슨 일이 있으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눌 가장 가까운 사람이 없는 것이다. 내가 좋은 일이 있거나 힘든 일이 있어도 바로 통화할 수 있는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의 나는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지내니까 지금의 가족은 여기에 있다. 하지만 부모님이라는 원가족도 나에게는 아주 가까운 존재다. 물론 원가족과 매일매일 24시간 같이 지내는 것은 쉽지 않다. 남편과 아이들과 24시간 지내는 것과는 또 다르다. 아무리 엄마, 아빠가 좋아도 한 집에서는 못살겠다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부모님과 연락하기 힘들다고 한다면 매우 힘들 것이다.

  나는 부모님에게서 어떤 걸 원하고 있는 걸까. 무조건적인 응원과 위로를 원하는 것 같다. 엄마, 아빠가 건강하시고 언제나 나의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다는 게 나에게 중요했던 것 같다. 중요한 판단을 하게 될 때는 나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이성적인 분인 아빠에게 연락을 한다. 나는 힘들고 위로받고 싶을 때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나의 흉허물을 덮어주고 사랑해줄 수 있는 엄마에게 연락을 한다.

  그런 두 분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금전적인 도움도 드리고 싶다. 그리고 정서적인 만족감 또한 드리고 싶다. 건강하게 즐거운 삶을 사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싶다. 그래서 금전적인 도움 면에서는 내가 엄마와 할 수 있는 사업에 대해 계획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저 용돈을 드리는 것만으로는 불안함이 가시지 않는다. 나와 엄마가 함께 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정서적인 만족감을 드릴 수 있는 방법으로는 내가 행복하게 내 경제적인 일을 잘 하는 것과 두 분의 삶에 대한 자서전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꿈틀'이라는 스타트업의 기억의 책 프로젝트는 나에게 의미가 크다. 그저 두 분을 인터뷰해서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적어서 책을 낸다는 건 부담도 되고 자꾸 생업에 치여 미루게 되었었다. 그런데 꿈틀에서 만든 '인생락서'라는 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더더욱 앱을 만든다는 것에 매료되었다. 단순화시키고 사업화할 수 있는 방법이 앱을 만드는 것이구나 더욱 절실하게 느꼈다. 그리고 건강하고 즐겁게 사실 수 있도록 건강에 대한 서포트를 해드려야 하나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부분은 나도 나를 먼저 챙겨야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제대로 못하는 데 내 마음 편하자고 부모님 건강을 신경쓰고 정보를 수집하다 보면 내가 오히려 힘들어질테니까 말이다. 나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데 그게 부모님 문제가 되면 흔들린다. 나는 일단 나부터 챙겨야 한다.  

 

  부모님과의 사이가 안좋은 사람도 어느 정도의 매듭은 필요하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부정적인 감정이 남아있으면 다른 일을 할 때도 감정소모가 심하다. 나는 4년 전까지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사실 대학교 때부터 4년 전까지니까 꽤 오랜 시간동안 그 매듭을 제대로 짓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게 상담이 필요한 문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모님과 나는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내가 속에서 풀지 못한 앙금이 있었다. 나는 처음에는 단순히 내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원인이 나와 부모님과의 관계로 인해 내가 발버둥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은 내 마음에서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부모님과의 사이가 좋아진 이후로 나는 감정적 소모를 덜 하게 되었다. 처음 상담을 할 때즈음에 상담사 선생님이 나에게 해준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어머님과 다툴 만큼 에너지가 넘치나봐요.' 나는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갔다. 아니 에너지가 넘쳐서가 아니라 문제가 나니까 에너지 소모되어서 힘들다는 얘기인데 무슨 소리지 싶었다. 나도 에너지를 아낄 수 있게 안싸운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뭔가 다투거나 언쟁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면 일단 내가 멈춘다. 그 다툼으로 하루 종일 에너지가 바닥이 되는 걸 원치 않고 무엇보다 다른 곳에 에너지를 쏟아도 모자른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걸 나는 한참 후에 알았다. 나는 정말로 에너지가 넘쳐서 엄마랑 다투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알게 되니 과거의 내가 안쓰럽기도 하지만 웃겼다. 상황을 따져보면 결국 심심하니까 엄마랑 싸운 게 된다. 나는 더 집중할 것, 중요한 것을 찾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니 엄마와 다투는 걸 문제해결이라고 생각하며 질리지도 않게 계속 하고 있었던 걸테니말이다.

  엄마,아빠와 다툴 수 없는 시기라 온다면 나는 어떨까. 제대로 이해 못한 것을 후회할 것이다. 따뜻한 말을 건네지 못한 것을 후회할 것이다. 더 웃지 못한 것을 아쉬워 할 것이다. 나는 이 많은 후회들을 하지 않기 위해 지금껏 이 선택들을 했다. 엄마, 아빠와 이야기나누고 자서전을 만들어드리겠다고 마음먹고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엄마와 함께 사업을 하려고도 계획하고 있다. 그러면서 나자신도 성장하려고 발버둥치려고 하고 있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다 해내려고 한다. 이게 욕심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욕심이 아니라 내가 내 삶에 애착을 갖고 있는 만큼 충실하고 싶어서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삶 전체를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고 글을 쓰지만 어쩌면 오늘 하루는 낭비하고 있는것은 아닐까하고 말이다. 유튜브 채널 신사임당 님의 말처럼 생각하는 나와 행동하는 나라는 자아를 분리시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