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엄마의 행복한 아이교육

체온과 가장 가까이 닿는 것

제비성냥갑 2019. 9. 5. 22:53

 

만화 찰리 브라운의 라이너스 정도는 아니지만 부드러운 천을 아낀다. 그리고 특히 엄마가 직접 바느질하신 아기 담요는 더더욱 버릴 수 없다. 원래 집에 있던 알록달록한 얇은 담요 위에 회색 부드러운 천을 씌워서 아기용 담요로 만들어 주셨다. 나는  패브릭에 집착할까. 엄마와 연결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엄마는 손재주가 좋으셔서 바느질을 잘 하신다. 그렇다고 옷을 만들어주실 정도로 실과 바늘을 열정적으로 사랑하신  아니다. 그저 뭔가 마음에 안 들거나 아쉬운 옷이나 이불들을 고칠  엄마의 기가 막힐 정도의 재주가 발휘된다. 미싱을 쓰시는 것도 아니다. 그냥 손바느질이다. 옷이 찢어졌을  그걸 꼬매 주셨는데 거의 실로 천을  수준이었다. 티가 안 났다.  정도로 우리 엄마는 꼼꼼했다. 

내가 보기에는 우리 엄마의 재주가 특별한 재능으로 보였지만 엄마는  손사래를 쳤다. 별거 아니라고. 그렇지만  옷을 고치고 손바느질만으로 그렇게 꼼꼼하게 미싱박듯하는 어머니들을 흔히 보지 못했다. 엄마에게는 당연하고 별로 어려울  없는 일이지만  그런 엄마의 능력이 자랑스러웠다. 둘이서 천을 가지고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구상할  우리는 세상 부러울  없이 손발이 맞는 파트너다. 말하면서도 신나고 만들면서도 신난다. 나는 거의 입으로만 일하지만 그래도 아이디어의 지분은 약간 있다. 엄마도 내가 신나 하고 엄마를 계속 칭찬하니까  열심히 손을 움직이신다. 

내가 패브릭과 엄마와의 특별함을 느끼는   하나의 연결고리 때문일 수도 있다. 어린 시절 읽었고 지금도 집에 있는 동화책 '나의 원피스'다. 

 

'나의 원피스'는 40년간 작은 사람들덕분에 소중하게 자랐습니다. 

지금까지 작은 사람들 고마워요.

앞으로도 작은 사람들  부탁해요.

- 니시마키 카야코

 

 

 이야기는 하얀 토끼가 길을 가다가 하얀 천을 줍는 것으로 시작한다. 미싱 드르륵 미싱 드르륵, '나의 원피스를 만들어야지'하며 토끼는 원피스를 만든다.  하얀 원피스를 입고 이곳 저곳 가는데 하얀 원피스가 어떻게 되는지 보는   동화의 묘미다.  지겹게 읽었는데도 나는  동화책이 참 좋다. 그리고 나는 어릴  읽은  책을 이제 나의 네 살 딸에게 읽어주고 있다. 일본어로 쓰여있어서 한국어로 즉석에서 번역하며 읽어주지만 그래도 즐겁다. 일본어로 읽을 때의 느낌을 살리고 싶어 운율을 신경 쓰며 읽어준다. 어쩌면 읽어주는 내가 더 신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동화책을 봤기 때문에 나에게 패브릭은 특별해진 걸까. 아니면 엄마의 재주가 나와 엄마를 이어 주기 때문에  좋은 걸까. 뭐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나와의 인연이 30년이  되어가는 동화책도, 부드러운 천도, 그리고 손재주 좋은 우리 엄마도 너무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