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성냥갑 2019. 10. 25. 21:39

이걸 꺼내...말어... 꺼내야 해결이 된다면 꺼내야겠다

한달매거진 Day 9 : 무엇이 당신을 두렵게 만드나요? 갑작스레 찾아온 통제할 수 없는 불행이 있었나요? 지금의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나에게 두려움은 각 시기별로 다른 형태로 나에게 다가왔다.

 

부모님이 빨리 돌아가실까 봐 겁났던 어린 시절에서부터 나의 반쪽을 못 만날까 봐 두려웠던 청소년기와 20대 초반 시절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귀여운 고민이었지만 당시의 나는 참 많이도 두려웠다. 어린아이에게 부모가 세상의 전부였을 테고, 나의 남은 평생을 함께할 소울메이트에 대한 목마름 역시 사춘기 나에게는 아주 많이 중요했다. 그렇게 나의 두려움은 시간이 흐르면서 또 내가 점점 성숙하면서 또 다른 형태로 대체되었다. 그 이전의 두려움은 귀엽게 느껴질 만큼.

 

아이를 낳고 나에게는 깊은 두려움이 생겼다. 내가 좋아서 아이 둘을 낳았는데 내가 이대로 아이만 키우는 전업주부가 되면 어떻게 하지? 엄마처럼 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공포가 나를 덮쳤다. 나는 왜 전업주부가 되는 걸 그렇게 두려워하는 걸까. 나는 왜 우리 엄마처럼 되는 게 그리 두려운 걸까.

 

나에게 큰 사건이라 하면 엄마가 돈을 잃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엄마는 전업주부로 사셨지만 내가 중학생 때 일을 하고 싶어 하셨다. 근데 그게 잘 안 풀리고 무리하고 사기당했던 일이 우리 가족에게는 큰 상처가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전업주부라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도 자신만의 수입이 조금이라도 있는 게 정신건강상 좋다고 굳게 믿게 되었다. 인간은 사회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싶어 한다. 엄마가 아무리 우리 가족을 위해 헌신하셨어도 어린 나는 그걸 당연시 여겼었다. 그래서 '엄마의 일'이라는 글을 반성하는 마음으로 썼었다. 사실 그 글은 과거의 나를 경멸하고 꾸짖는 글이기도 했다.

 

또 하나 내가 느끼는 두려움은 나의 멘탈에 대한 불신이다. 내가 육아나 사회적인 문제나 내 안의 문제들 등 이 모든 걸 견디지 못하고 미쳐버릴 것 같은 두려움 말이다. 나는 내가 멘탈을 잘 관리하지 못한다면 위험하다는 것을 안다. 내 두려움은 어느 날 내가 미쳐버리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감에서 나온다.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내 머릿속의 생각을 꺼내서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사실 글쓰기라는 돌파구를 못 찾았으면 어땠을까 상상하기도 싫다. 처음 상담을 받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대학생 때 부모님과의 관계 때문이었다. 미술상담 선생님과 6년 정도 상담을 받았다. 처음에는 매주 안 가면 미쳐버릴 것 같고 산소 없이 돌아다니는 기분이었는데 차차 2주에 한 번, 한 달에 한번 이런 식으로 점점 텀이 길어졌다. 상담을 받지 않고도 불안하지 않게 된지는 꽤 되었다.

 

지금은 사실 상담보다 충분한 잠과 달리기와 글쓰기, 독서, 영감을 주는 동료들과의 성장이 나를 살린다는 것을 안다. 이런 나만의 방법들이 쌓이니 불안감이 어느 순간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 이 글을 쓰면서도 얼마나 많은 단락을 뺐는지 모른다. 쓰다 보니 두려워할 필요 없는 일들이어서 지워버린 거다. 지금 써놓은 두 가지 두려움도 써놓고 보니 그다지 두렵지 않아 졌다. 참 신기하다. 내가 이 두 가지 얘기를 꺼내면서 정말 괴로울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그렇지 않다는 게.

 

이게 내가 글쓰기를 그만둘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