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지 않는 투자의 기본기 쌓기
나에게 투자는 정말 두려운 단어이자 먼 단어처럼 느껴졌다. 처음 투자 또는 재테크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지금 당장 필요한 게 아니라, 내가 먼훗날 부자가 되었을 때 그 자산을 잘 관리하기 위한 공부를 미리 해야겠다 느꼈기 때문이다. 참 웃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지금 부자가 아닌데 미리 부자가 되었을 때에 공부하면 늦으니까 미리 공부하겠다라니…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심지어 우리 부모님도…) 비웃을 얘기겠지만, 나에게는 진지한 문제였다.
그 때가 되어 부랴부랴 전문가에게 자산 관리를 맡기려고 해도 어떤 전문가가 신뢰할 만한지 공부부족인 나에게는 판단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미리 공부해야 내 아까운 돈(그들에게 지불할 수수료나 실패비용)을 아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철저히 자산을 지키기위한 접근이었다.
한 가지 실제 사례를 밝히자면 나는 사회 초년생 때 은퇴하신 어르신들이 듣는 ‘절세 특강’을 들을러 간 적이 있다. 탈세가 아닌 합법적으로 절세를 할 수 있는 방법을 미리 알고 싶었고 인생이모작을 준비하시는 어르신들 사이에 끼여 나 혼자만 30대초반이었다. 그 당시 배웠던 게 잘 기억이 안나긴 하지만 그런 경험들이 지금의 나로 이끌어왔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그 때 받았던 자료는 아빠께 전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부터 배운 걸 이렇게 공개적으로 포스팅하는 버릇을 키워놨더라면 참 좋았을텐데 참 아쉽다. 이래서 공개적인 기록이 참 중요하다고 말하는구나 싶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나에게 이미 ‘돈을 많이 벌었을 때’는 기정사실이었고 그 돈을 어떻게 지키느냐가 관심사였다. 많은 이들이 투자에 실패하고 있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다. 최근에 또 다른 책을 하나 보게 되었다. <거인의 포트폴리오>라는 책인데 퀀트 투자, 자산배분에 대한 책이었다. 나는 가치투자라는 말밖에 잘 모르고 그 외의 투자법에 대해서는 그냥 이름만 들어보는 수준이었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은 순전히 운이었고 책 소개에서 내가 지금 가장 궁금했던 채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있다는 걸 목차를 보고 알게 되어 선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을 받아보고 초반 소개를 읽으며 ‘돈을 잃지 않는 투자’의 기본인 자산배분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알고 다시 한번 이 책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나는 참 책 복, 멘토 복, 정보 복이 있는 것 같다. 참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이다.
잃지 않는 투자를 우선한다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인 것같지만 그렇지 않다. 많은 이들이 ‘잃지 않는 투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대박을 낼 수 있는 투자’를 할지에만 혈안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여러 투자 중에 특히 주식이 무서웠던 이유는 주식으로 수익을 낸 사람은 냉철한 분석가이고 그 외 사람들은 다 돈을 잃을 수 있겠다는 두려움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겁이 많은 나는 절대 주식 투자를 하면 안되는 것이라고, 간이 큰 사람만 주식에 적합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올해 들어 알게 된 중요한 사실이 있다. 나의 가장 큰 약점이 나의 강점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책을 읽는게 너무 느리다. 그게 내 평생의 한이라고 생각했었고 내 핸디캡이라고 느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내 여동생은 책을 엄청 빨리 읽는 편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역사책을 동화책 읽듯이 재미있어 했던 동생은 책을 엄청나게 빨리 읽는 축에 속했고 그에 비해 나는 엄청난 슬로우 리더였다. 동생처럼 빨리 읽고 싶어 속독에 대한 것도 알아본 적도 있다. 하지만 몇 번 하다가 실패했고 고정형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던 그 당시 나는, 이것도 나의 한계겠거니 생각하고 포기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책을 느리게 읽는 사람이라는 주홍글씨를 스스로에게 새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책을 읽어야만 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게다가 1주일에 한 권, 그리고 그걸 읽고 서평까지. 그걸 12주간 경험하다보니 내가 어쨌든 느리게 읽어도 완독은 하긴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각막으로 훑는 것이 중요한게 아님을 알게 되었다. 속독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 책 안에서 하나라도 더 제대로 뽑아먹고 내 삶에 적용하느냐가 중요해졌다. 그리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가 읽어야만 하는 좋은 책들은 시간이 갈수록 쌓이기 시작했다. 나는 책들의 홍수 속에서 패닉에 빠져있었다. 그러면서 그게 오히려 전략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나는 많은 책들을 읽기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그 책들을 목차 스키밍이라도 하면서 속도를 따라가기로 한다. 목차 스키밍을 하면서 원서와 번역서 비교도 하면서 책을 정독하는 게 아닌 책의 지도라고 할 수 있는 목차인 큰숲을 먼저 시간을 들여보며 생각을 기록하는 작업을 매일 하기 시작했다. 책을 매일 한 권 읽을 수는 없었지만 목차 스키밍을 하며 글을 쓰는 건 매일 한 권씩이 가능했다. 그렇게 매일 하다보니 어느새 내가 목차 스키밍한 책이 150권이 넘어가있었다. 너무 많아져서 책을 찾기가 힘들어져서 개인 DB용 네이버 카페를 만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나는 목차 스키밍한 글과 그 책을 한 챕터라도 읽고 나서 쓴 서평들로 나의 데이터베이스를 쌓아나갔다. 이게 내가 내 최악의 약점이 내 최고의 강점이 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이유다. 내가 만약 책을 읽는 게 아주 빠른 사람이었다면 목차 스키밍을 할 생각을 절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내 급한 성격상 읽기만 하고 글로 기록해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보 수집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읽고 쓰지 않은 책은 안 읽은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더욱 그렇다. 나는 1년 전에 목차 스키밍했던 글을 찾으면 다시 그 당시 내가 느낀 것 그리고 궁금했던 게 다시금 생각난다. 그래서 지금 읽고 있는 책과 곱하기라는 시너지를 내며 동시에 여러권을 읽은 것과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다독가라는 분들에 비하면 나를 스쳐간 책들은 아직 명함도 못내밀 수준이다. 하지만 내가 안읽었어도 대략적인 흐름과 내용을 아는 책들이 많아서 여기저기서 내용을 가져오며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목차 스키밍이라는 내공이 쌓였기 때문이다.
투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너무 길게 돌아온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말한 나의 큰 약점이 나의 엄청난 강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은 투자에서도 마찬가지다. 겁이 많고 돌다리를 두드리는 게 기본이었던 내가 오히려 주식투자에 강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돈을 잃지 않는 투자’를 가장 우선으로 생각할 만큼 간이 콩알만했기 때문이다. 다들 주식으로 대박을 노리고 이 판에 들어온다. 하지만 겁많은 쫄보인 나는 어떻게 하면 돈을 안 잃을까에 집중해서 투자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도 그걸 위주로 하고 있다. 내가 지금 주식 투자를 시작한지 3달도 안되었는데 내가 주식투자가 강하다고 말한 이유는 내가 수익을 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전체 주식 계좌로 봤을 때는 마이너스인 상황이다. 하지만 마음이 여유롭다. 손해를 보고 있는데 여유롭다니 참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사이클의 업 앤 다운이 심한 이 바닥에서 위기에서도 냉정하고 불안하지 않을 수 있다는 나의 멘탈에 놀라게 되었다. 그건 내가 강철멘탈이라서가 아니라 잃지 않기 위한 돈공부를 해온 시간이 있었고 내 선택에 대한 믿음이 있고, 그 믿음을 과신하지 않기 위해 지금도 매일 공부를 하는 걸 놓지 않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게 지겹다, 쉽게 돈 버는 법을 알고 싶다라는 사람일수록 있던 돈도 잃기 쉽다. 그런데 공부를 하는 게 지겨운 게 아니라 재미있다면? 나는 괴롭게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너무나도 재미있게 공부를 하고 있다. 재미있게 공부를 하면서 잃지 않는 투자를 한다… 그것이야말로 돈을 벌고 싶어하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쌓아야 할 기본 소양이 아닐까. 공부는 수험공부처럼 괴롭게 하는 게 아니다. 내 호기심이라는 닻을 세우고 그걸따라 몰입하며 주도적으로 항해를 하는 여행이다. 그 기본을 알게 해준 게 습관이라는 자동시스템이라는 사실도 다시 한번 덧붙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