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을 했는데 나의 눈살을 찌푸리게하는 화면이 떴다.
'새 비밀번호 설정을 하십시오'
새 비밀번호를 설정하라는 메시지가 뜨면 짜증부터 난다. '누가 내 계정을 해킹한다고... 뭐 숨길 것도 없는데 왜 자꾸 비밀번호를 바꾸래...'라며 귀찮다는 마음부터 들었다. 내 계정이 해킹당할 확률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고 별로 위기의식을 느낀 적도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비밀번호를 여섯 자리 숫자로만 지정할 수 없는 게 당연한 게 되어버렸다. 보안 수준을 높이지 않으면 회원가입을 진행할 수조차 없다. 그렇게 일상에서 우리의 짜증도 늘어만 갔다.
그런데 '벌거벗은 통계학'에서는 나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할 정보를 나에게 속삭여주었다. 여섯 자리 숫자로만 비밀번호를 설정한 경우 10을 6번 곱한 100만 가지 조합이 나온다. 100만이라는 숫자가 아주 많은 것처럼 보여도 컴퓨터를 사용하면 1초도 안되어서 100만 개의 가능한 조합을 모두 시도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알파벳과 특수기호까지 포함시키면 46을 8번 곱한 20조 이상(대소문자를 구분한다면 더욱 많은!!)의 조합으로 크게 늘어난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렇게 나의 짜증을 유발하면서 내 일상과 아주 밀접한 일이 통계학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니 통계를 학창 시절에 어쩔 수없이 배웠던 '재미없는 것'으로 치부하기에는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률은 우리에게 인생의 불확실성을 다룰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한다.
- 찰스 윌런 '벌거벗은 통계학'
복권, 보험, 장기투자, 전자제품 보증기간, 넷플릭스, 야구, 여론조사, 예상 유권자 추측, 의학 관련 연구발표 등등 우리 삶과 관여되어 있지 않은 걸 찾는 게 어려울 정도로 깊숙하게 연관되어 있는 게 통계였다. 심지어 이 통계를 이용해서 '실적이 좋아 보이게' 속일 수도 있다. 우리가 통계를 머리 아프다고 포기해버린다면 이걸 악용하는 이들에게 속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통계가 우리 삶에 깊숙이 관여되어 있지만 남의 얘기 같고 통계와는 작별을 고하고 싶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많은 사람들이 통계를 '포기'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포기하다가도 다시 붙잡는 이유는 영어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통계도 영어와 같이 포기하면 안 되는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라는 생각에 우리가 통계를 포기하면 안 되는 이유 3가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대체 왜 다시 '통계'에 주목해야 할까
1. STEM 교육이 우리의 미래다
내가 STEM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것은 교육 관련 다큐멘터리에서였다. 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의 약자인 STEM은 여기에 Arts도 더해져 STEAM 교육으로도 알려져 있다. 과학 인재 양성을 위한 특별한 융합인재교육이라는 의미로 STEM 교육의 필요성을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수많은 수포자가 양성이 되고 과학이 어렵다고 포기하는 아이들이 많아지는 것에 위기의식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 '나는 수학이나 과학을 못하니까 문과를 가야지'가 아니라 포기를 하는 이들이 없게끔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어른들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 수학, 과학 영재를 만들어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갈 필요 없다. '포기'하는 아이들이 안 생기도록 기본적인 수준 유지를 하지 못한다면 그 아이들이 앞으로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아니, 어쩌면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예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아이들에게 어려운 통계가 아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상과 연관 있는 통계에 대해 풀어낼 수 있는 어른이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우리도 이제부터라도 통계에 다시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 4차 산업이라는데 딥러닝, 머신러닝, 빅데이터가 뭐가 뭔지 모른다면.
앱 만들기에 관심이 많아 코딩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다가, 유튜브 채널 '테크보이 워니'에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우버에서 일하는)의 인터뷰 영상을 보았다. 이 쪽 일을 하려면 수학이나 통계, 산업공학을 알아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통계에 대한 필요성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결국 머신러닝(인공지능의 갈래로 머신러닝이 나왔고, 머신러닝 안에서 딥러닝이 나왔다고 이해했는데 좀 더 잘 아시는 분께서 댓글 부탁드립니다.)을 한다는 것은 '예측하는 일'이라고 했다. 예측할 때 넣는 데이터가 제대로 된 데이터인지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는 말 역시 우리가 데이터가 넘치는 세상에서 살면서 명심해야 하는 점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3. 일상과 연관이 있을 때 비로소 어려운 학문은 '재미'가 된다
'벌거벗은 통계학'이 의미 있게 다가왔던 이유는 원래 같았으면 엄두도 못 냈을 통계라는 어려운 걸 쉽게 일반인도 접근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냈다는 것이었다. 이런 책이 많아져야 하고 이왕이면 한 꺼풀 더 쉽게 풀어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완전 초보자, 어린이의 시선으로도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제대로 이해한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학창 시절에 수학이 재미없고 통계가 어렵게 느껴졌던 이유는 이게 일상에서 어디에 적용이 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넷플릭스가 어떻게 내가 좋아할 만한 영화를 추천해주는지, 아마존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성장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 서비스들을 당연하게 사용해왔다. 하지만 우리 일상에서 무심코 사용하던 것들이 어마어마한 수익을 내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순간, 사용자로만 머무르는 것에 위기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통계를 다시 배울 시기가 지났다고 생각하는 분들을 위해 내가 왜 겁 없이 어려운 통계를 배워야 한다(이왕이면 재미있게)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 이야기하고 끝마치려고 한다.
건축을 전공으로 대학교에 입학한 후 학교에서 정식적인 수업으로 우리에게 가르쳐준 툴은 CAD밖에 없었다.
포토샵을 써본 적도 없고 그림판(.....)밖에 쓸 줄 몰랐던 나는 당황했다. 모든 동기들이 포토샵을 이미 사용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나처럼 대학에 와서 처음 포토샵을 다뤄본 친구들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나 빼고 모두가 모든 툴을 잘 다루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우리 과 학생들은 졸업 전까지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인디자인(북디자인 툴), 3D 렌더링 툴들을 스스로 익혀 세상에 던져졌다.
이때의 경험으로 알게 된 건 툴은 내가 닥친 과제(일상)와 연관 있을 때 더 빨리 배웠고 이해도 수월했다는 것이다. 과제로 했었기 때문에 재미는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걸 다루게 된 다음에는 뿌듯했고 어느 정도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사람이 만든 것이니까 배워서 못할 건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이 든 건 말이다. 그게 내가 겁을 상실하고 코딩을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다. '벌거벗은 통계학'을 읽고 통계나 알고리즘에 대해서도 폭넓게 이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추가가 된 것 역시 슬프지만 사실이다. 배울 게 많아졌으니 어서 실행에 옮겨야겠다.
'책덕후의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삶과 일이 매쉬업 될 때 (0) | 2019.08.21 |
---|---|
한 순간이 모든 시간을 지배할 때 (0) | 2019.08.14 |
판돈을 키우세요 (0) | 2019.08.01 |
아무리해도 안변한다고요! (0) | 2019.07.31 |
잃을 준비되셨습니까? (0) | 2019.07.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