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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주인되기

나 자신을 먹여살리는 시간

30대가 되고 나서 내가 20대로 돌아간다면 혹은 우리 아이가 20대가 된다면 어떤 게 필요할까를 처음 고민하게 되었다.

나의 20대를 돌아보면 나만을 챙기기도 벅차서 주위를 볼 여유가 없었다.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신경이 쓰이지 않았고 주위의 소중한 사람에게도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준 적도 많았다. 그 당시 나는 내 수강신청 하나로 내 한 학기 스케줄이 크게 흔들릴 수 있었으며 조별과제 일정이 안 맞으면 나의 다른 약속이 엉망이 될 수도 있었고 몇 년 후의 취업과도 연관되어있을 학점까지도 내 안위와 자유를 생각하느라 등한시했었다. 그만큼 내가 중요했다.

그때의 내가 왜 그랬을까 반성을 한다고 그 시기를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어쩔 수 없지만 그때는 그때의 치열함이었고 나만의 발버둥이었다.

그 시기를 지나 어찌어찌 취업을 하고 3년간의 회사생활을 또 어찌어찌 버티며 괴로움에 몸부림치다가 그제야 지금까지 안 하던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대학생 때는 나의 자유만 생각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게 가득해서 흘러가는 시간이 미칠 듯이 아쉬웠었는데 졸업을 할 때가 되니 그 자유가 나를 발목 잡았었다는 걸 알았다.

너무 놀아서 취업 준비가 제대로 안되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나에게 '제약'이 없으니 뭘 해야 할지 정하질 못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그냥 아무 데나 들어가서 돈을 벌고 싶었다. 그렇다고 야근이 많고 내 삶의 가치가 떨어질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도 일할 수 있을 정도의 절실함 또한 없었다. 그저 9시 출근 6시 퇴근을 하며 내 입에 풀칠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내 삶에 대해 돌아보고 싶었다.

어른들은 아무 걱정 없이 공부만 할 수 있는 중고등학생 때, 대학생 때가 좋다고들 하신다. 근데 그 말은 잘못된 얘기인 것 같다. 그 시기만큼 뭐가 뭔지 모르지만 그래서 더 발버둥 치게 되고 고민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힘겨운 시기는 없을 테니까.

30대가 되어도 여전히 고민거리는 많고 해결되지 않는 일은 많지만 어릴 때보다는 좀 더 냉정하게 차분하게 생각을 하고 선택을 할 수 있는 것 같긴 하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그 당시 힘들었을 나의 20대와 우리 아이들의 20대에 무엇이 더해져야 할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 모든 게 이루어지는데 대학교로 진학한다는 것 자체가 빚을 떠안고 그 울타리에서 더욱 벗어나지 못하는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갓 성인이 된 아이들에게는 대학교에 가서 수강신청을 하고 그전까지 못 누린 자유를 만끽하고 수업과 알바를 오가는 생활보다도 더 먼저 경험해야 할 것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건 '나 자신을 먹여 살리는 일'이다. 온전히 나 혼자를 감당하는 것이다. 자취를 하는 경우 그게 어느 정도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겠지만 학교를 다니며 자취를 하는 학생들의 대부분의 자취방을 보면 답이 나온다.

엉망이다.

그냥 자취방은 잠만 자는 공간으로 전락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걸 자신을 제대로 챙기고 먹이고 있다고는 표현할 수 없다. 우리가 자신을 먹여 살린다는 건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나의 건강도 나의 생활 패턴도 내가 벗어던지는 옷가지들 빨래도 내가 다 알아서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어떻게 보면 대학교 다니면서 자취를 하더라도 알바에 학점관리에 취업준비에 동아리 활동에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보니 그게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취업하고 나서 월급을 받으면서도 나 자신을 '제대로' 먹여 살리고 있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어른들이 넘치게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옷을 아무 데나 벗어두고 끼니는 대충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우고 그제야 자신만의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지만 시간은 금방 가고 또다시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하는 하루를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주말만을 바라보며 일을 하지만 그 주말 또한 금방 지나가고 휴가만을 바라보지만 그 휴가는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고 갔다 온다 하더라도 그 후에 남은 것은 텅 빈 통장과 인스타에서 활짝 웃고 있는 여행지에서의 낯선 나밖에 없진 않은지...

그건 휴식이라기보다 또다시 일 년을 이 잠깐의 휘발성 보여주기 식 허세에 팔아넘긴 것과도 같다. 또다시 우리는 1년을 그저 묵묵히 일해야 할 핑계가 생긴 것이다.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 일이 즐겁지 않더라도 참아내야 하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경제활동만큼 나를 갉아먹는 것이 있을까.




물론 똑같이 회사를 다니면서도 즐겁고 커리어에 만족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그 일에서 자기 존재의 이유를 찾은 사람이니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라고 다 이런 불행을 겪고 있지는 않다고 말하고 싶다. 다만 적을 뿐이지.

그래서 20대에 대학생활보다 더 중요한 자기 먹여 살리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라고 물으신다면 숲에서 1년 살아보기를 권해보고자 한다. 사계절을 느끼면서 나의 세끼를 챙기고 빨래를 하고 이부자리를 정리하며 자신만의 갭이어를 보내봐야 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아르바이트를 한 돈으로 잠시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건 잠시 여행으로 휴식을 한 것이지 일상을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형태의 여행도 필요하다.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는 것도 필요하니까. 하지만 나는 그것 외에 나라는 사람을 온전히 나에게 맡겨서 부모의 도움 없이 '살아내는' 경험을 해봐야 한다는 의미로의 시간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숲에서 사는데 돈이 들 텐데 그건 무슨 돈으로 사느냐로 할 수 있지만 3명의 청년이 시작한 팜프라(Farmfra)라는 회사에서 그 시도를 지금 하고 있다. 6평의 이동식 주거를 만들어 숲에서 살고 있다. 지금은 각자의 공간의 중요성 때문에 2평짜리를 세 개 만드는 중이라고 한다.

집 앞 텃밭에서 건강한 유기농 먹거리를 직접 기르고 수확하고 그것들로 요리하며 먹는다는 게 무엇인지, 내 집을 꾸린다는 게 어떤 건지, 그 속에서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알아간다는 것이 살아가는 데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도시에 살면서 어떤 회사에 취직해야지만 나를 먹여 살릴 수 있고 월세도 낼 수 있고 그 외의 취미 생활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방법밖에 없다고 믿으며 괴로워하고 있다. 내가 노동을 통해서 얻은 결실로 당연히 누려야 할 것들을 말도 안 되게 높은 월세와 물가에 치여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고 있다.

왜 건강한 먹거리를 먹는데 도시에서는 더욱 비싼 돈을 줘야지만 가능한 걸까. 우리는 건강하게 사는 것마저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당연히 누려야 할 것들을 누릴 자유, 그리고 지금 우리가 처한 문제의 심각성을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힘이 청년들에게 생기려면 도시에서 뺑뺑이 돌리듯 취업준비와 고된 회사생활로 기력이 빠진 그들이 숨 쉴 틈을 줘야 한다. 정부의 정책 변화도 시급하지만 그것만 기다리기에는, 어른들에게 우리 삶을 맡기기에는 불안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내가 팜프라에게 감동했고 팜프라를 응원하고 팜프라에 도움이 되고 싶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