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돈을 많이 벌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중학생 때였던 것 같다. 난 연봉 10억을 받을 거야!라는 당찬 포부를 가족들에게 당당히 밝히며 그게 불가능하지 않다는 듯이 의기양양하던 시절이었다. 이걸 근자감이라고 하던가. 중학생 때 나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아이였다. 좋은 대학에는 당연히 붙을 것 같았고 붙은 다음에는 멋진 캠퍼스 라이프를 보낼 것 같았고 그러고 나서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당연히 유학을 갈 것 같았고(무슨 돈으로?? 지금 생각해보면 참 현실성 제로인 아이였던 것 같다) 뭔진 모르지만 어떤 분야에서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 되어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 당시 나에게는 2가지가 빠져 있었다. '무엇'으로 연봉 10억을 벌고 싶냐는 것과 연봉 10억을 받는다면 그 돈으로 '뭘' 하느냐는 것이었다. 근자감 넘치는 꼬마는 그 생각까지에는 미치지 못했고 그저 당당히 '난 뭐든지 헤쳐나갈 수 있어!!'라며 현실의 폭풍우를 직격으로 맞으며 성장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자존감 바닥인 쭈꾸리 대학교 졸업반이 되어 있었다.
유학도 금전적인 것을 일단 제쳐두고 하고 싶은 것이 있어야 그걸 배우러 갈 텐데 졸업반이던 나는 새롭게 배우고 싶은 게 없었다. 엄밀히 말해서 돈을 누군가에게 퍼주면서(그것도 내 돈도 아니고 부모님 돈을) 배우는 데에 지쳐버린 것이다.
나는 그저 뭐든지 좋으니 내 힘으로 돈을 벌고 싶었다. 취업 준비를 하는 6개월 동안 내가 밤거리를 거닐 때마다 불 켜진 회사들을 보며 이런 생각들을 했다.
'아, 저 많은 불빛 중에 나를 필요로 해주는 곳은 정녕 없단 말인가. 정말 아무 데나 좋으니 일만 시켜만 주면 뭐든 열심히 할 텐데...'
그 당시 나에게 필요했던 건 내 자아실현을 시켜 줄 멋들어진 일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도 내 힘으로 나를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자그마한 성취감 하나였다.
어떤 이는 부모님 밑에서 캥거루족으로 살 수 있다는 것도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생 때부터 생계를 걱정하며 알바를 하면서 자기 용돈이며 주거비며, 심지어 가족들 생활비까지 걱정해야 하는 이라면 잠시만이라도 부모님 밑에서 아무 걱정 없이 대학생활을, 취업준비 시기를 보내고 싶다고 간절히 바랄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 그리고 그것이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을 때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참 묘하다. 누군가에게 신세 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영원하지 않고 언제든지 끊길 수 있다는 상황은 사람에게 불안감을 가져다준다.
내 삶을 내가 컨트롤할 수 없고 누군가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한 인간을 정말로 불안하게 만든다.
회사에 다니며 많은 월급을 받으면서도 불안감을 떨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거에 의아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야말로 누군가에게 고용된 입장이기 때문에 느끼는 당연한 감정인 것이다.
내가 나를 고용한 경우는 벌이가 일정치 않으면 더욱 불안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생각보다 아주 작은 불안이다. 내가 나를 컨트롤하고 있다는 느낌, 내가 주체자라는 느낌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큰 성취감을 안겨준다.
그래서 나는 회사생활 3년을 채우고 주체적인 삶을 선택했다. 주체적인 삶을 선택하니 내가 가진 것은 시간뿐이었다. 모아둔 돈은 있었지만 그걸 쓴다는 게 불안했다. 그 돈을 다 써버리면 그 다음은? 다시 누군가에게 고용되는 삶을 선택해야만 할까? 아니, 절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회사를 그만둘 때 사장이 예의상이었겠지만 다시 돌아올 마음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했을 때 나는 당당하게 '앞으로는 어느 회사에 고용된 형태로 살아가지 않으려고 합니다.'라며 나왔다. 그 말은 나 스스로에게 한 약속과도 같았다. 나는 나에게 월급을 스스로 주고 싶었다.
그 후 내가 이것저것 하면서 내가 번역한 책이 민음사에서 출간되기도 했고 그 사이 출산도 했고 육아도 했고 또다시 임신 중인 지금까지 마음 놓고 쉰 날이 없는 나날을 보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을 보내는 것에 심각하게 불안을 느끼는 성격이라 나의 시간들을 어떻게든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보내야 한다고 느끼며 지냈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요새 들어 무너지기 시작했다. 나의 시간에 대한 강박이 시간을 더욱 소모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더 뭔가를 잘해야 하고 더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고 쉬는 것도 나에게 도움이 되는 걸로 해야 한다는 강박. 그게 나를 더욱 지치게 했다.
결국 나는 내 시간을 어떻게 하면 돈으로 바꿀 수 있을지에만 골몰해 있었던 것이다.
그걸 알게 된 순간 멍했다.
돈보다 시간이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던 나인데 나만의 시간이 중요하고 내가 당장 하고 싶은 것을 해야지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거라 믿었던 나였는데 나는 결국 내 시간을 돈과 맞바꾸려 했었던 것이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내 시간이 돈에 팔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 너무나도 괴로웠다. 내 시급은 이게 아니야. 내 시간의 가치는 이것보다도 더 높은데라고 말이다. 그러던 내가 또다시 귀하게 얻은 내 시간을 돈을 위해 갖다 바치려고 하다니 아이러니가 아니고 뭔가.
그렇다면 나의 시간의 가치, 그리고 내 시간을 어떤 것에 쏟아야지 나는 그걸 아까워하지 않을까.
극단적으로 내 월급이 천만 원이라고 하면 나는 만족할까. 그 돈으로 무엇을 할까. 3~5년간 내 개인 시간은 없소 라며 이 돈을 고스란히 모으고 집을 산다면 행복할까? 나의 아이들이 가장 예쁠 3~5년간 아이들과 놀아주지도 못하고 번 돈으로 나는 행복할까?
집이 뭐길래, 그까짓 집이 뭐길래 아이들의 다시 오지 않을 3~5년을 맞바꿀 가치에는 못 미친다는 게 나의 결론이었다. 그렇지만 온전히 육아에만 온 힘을 쏟았을 때 내가 느낄 공허함 또한 걱정이 되었기 때문에 나는 제대로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내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들의 시간을 줄여서 '시간을 버는 것'이다.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쉬운 것 같지만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시간을 아끼려면 좀 더 효율적이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저 몸을 움직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머리도 잘 굴려야 한다.
시간을 벌게 된다면 나는 그 시간을 어디에다가 쓸 것인가. 이 질문은 내가 돈이 10억이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보다도 더 어려운 질문인 것 같다. 천천히 곱씹으며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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