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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엄마의 행복한 아이교육

여자에게 경력 단절은 없다

나는 결혼하기 전부터 보육 걱정을 했었다. 지인들은 그걸 이상하게 생각했다. 아니 왜 아기도 안 가졌고 결혼도 안 했는데 그런 걱정부터 하냐고. 걱정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불안해하는 바보 같은 일처럼 여겨질 때가 많지만 그 걱정이 미래를 대비하게끔 할 때도 있다.

나는 내가 이미 아이를 가지고 육아와 일 사이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이런 고민을 하면 늦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혼 전부터 보육 걱정을 했다. 남들에게는 바보 같아 보일지 몰라도 아이도 없었던 그 당시의 나는 공동보육 공동체 모임에 가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견학하기도 하고 이곳저곳 기웃거리기도 했었다. 회사일로 평일에 정신이 없다가도 퇴근 후 또는 주말만 되면 이리저리 다니느라 회사일보다도 더 바쁘게 보냈다.

그때 당시 내가 느꼈던 것은 분노였다. 저출산이네 어쩌네 하면서 출산장려를 하면서 결과적으로는 그들은 출산하고 아이를 키우려는 부모의 고충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항상 여러 공약들 사이에서 의무적이다시피 들어있는 출산장려 정책들은 초등학생 임원선거에서 '우리 반을 좀 더 좋게 만들겠습니다'와 같이 두리뭉실하지만 그렇다고 안 넣으면 뭔가 찝찝한 공약 같은 거였겠지 싶다.

그래서 그들이 안 한다면 내가 뭔가를 해서라도 이 상황을 바꿔보겠다 대단한 포부를 가지기도 했다. 내가 가진 힘은 쥐꼬리만 했지만 나의 분노와 답답함은 그 어느 정치인보다 뜨거우리라 생각했을 정도였다. 가장 좋은 것은 나라에서 육아를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좋은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빠도 육아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업에서 정시퇴근을 하게끔 국가에서 강제적으로 밀어붙여야 한다고. 그리고 엄마들의 경력단절이 사라질 수 있게 나라에서 힘써야 한다고. 육아 휴직이나 육아를 위해 일을 쉬더라도 언제든 복귀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들을 '국가'가 만들어야 한다고 뜨겁게 생각했다.




그렇게 나의 답답함은 육아를 하면서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으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사실 온전히 육아를 하면서 다른 일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경력단절이 되어 있는 자신의 상황을 불안해하고 기회만 있다면(양가 어른이 아이를 맡아주신다거나, 도우미를 구한다거나, 그 외의 어떤 초인적인 방법이 생각나거나) 일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월급쟁이이자 9 to 6라는 시간에 묶이기 싫었던 나는 새로운 회사를 찾는 대신 육아를 하면서 할 수 있는 나만의 일을 찾기 시작했다. '육아를 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하루에 1~3시간 정도 할 수 있는 일이면서 재택근무가 가능하면서 내가 오너여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은 아이의 스케줄에 맞춰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유동적으로 쓸 수 있는 일이어야 하며 일의 대부분이 집에서 가능해야 하고 누군가에게 종속되어 있다면 눈치가 보여 할 수 없으므로 내가 내 스케줄대로 컨트롤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

그러다가 얼마 전 느꼈다. 이건 기회라고. 국가에서 생각해 줄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란 고리타분한 월급쟁이로의 복귀밖에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원하는 건 9 to 6 풀타임 일자리가 아니다. 풀타임 일자리만이 제대로 된 일자리란 그 어떤 근거도 없다. 4차 산업 혁명을 논하는 지금 이 시대에 정규직, 풀타임 일자리만을 고집하는 건 시대에 뒤쳐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력단절이 겁이나 고민을 시작했지만 결국에는 이것은 나를 자유롭게 할 새로운 길을 탐색할 기회가 된 것이다.

내가 경력 단절이란 말을 싫어하는 이유는 육아 때문이던 자신의 꿈을 위해서든 갭이어와 같은 시간을 보내는 시간들이 결코 경력이 '단절'된 시간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업주부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경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가정이라는 '기업체'를 컨트롤하는 CEO로서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생각해야 하는 일, 그리고 열심히 해도 표도 잘 안 나고 칭찬해주는 이 없이도 묵묵히 하루하루 일을 해내는 그들이 어찌 전혀 경력이 없이 헛된 시간을 보냈다 할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경력 단절을 두려워하는 분들에게 나의 간절함을 전하고 싶다. 자신만의 일을 찾아야 한다고. 그리고 답답하고 막다른 길에 다다른 것 같았을 때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문이 열리는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