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년 하반기에 자발적으로 퇴사를 결심하고 실행했다.
큰 회사도 아니고 월급도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월급이 밀린 적도 없었고 회사 나름의 비전도 있었으며 그 속에서 내가 열심히 하면서 회사와 함께 커나가면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답답했다. 월급이 내가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나는 항상 나 자신을 다독이기(혹은 약간의 눈속임 같은 역할도 포함해서) 위해서 '상상하기'를 하는데 그 걸해도 내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상하기'란 예를 들면 '현재 상황에서 내가 원하는 월급을 받는다면'이라거나 '이미 물질적인 것은 다 충족되어(집도 사고) 돈 걱정이 없어진다면'과 같은 상상 말이다. 이런 상상은 터무니없을 것 같지만 현재의 나를 더 잘 알 수 있기도 하고 의외로 재미있다.
그리고 그 상상이 끝났을 때 제대로 집중해야 할 분야에 확실히 방향을 잡고 달려 나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게다가 이 '상상하기'가 막상 해보면 그렇게 쉽지도 않다. 돈이 많아진다면 뭐든 할 수 있지 뭐라고 생각하겠지만, 의외로 그 돈으로 다 해봤는데 만족감보다는 허무함이 일 때 정말 당황스럽기 때문이다.
그럼 상상 시작. 돈이 많다면 일단 집을 산다. 매달 생활비를 넉넉하게 빼놓는다(무엇이든지 살 수 있게). 이왕이면 배우자가 원하는 것도 다 사준다. 양쪽 부모님께서 원하시던 것도 다 산다.
아이들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살 돈도 넉넉하게 빼놓는다. 매년 가고 싶었던 곳에 1등석 또는 비즈니스석으로 갈 수 있게 여행비도 따로 빼놓는다. 아이들 대학 학비(20년 후에는 반값 또는 무상이 되어 있으려나 모르겠지만)도 있고, 아이들 독립할 수 있도록 원룸 하나씩 매입하고, 아이들 결혼은 큰돈 안 들일 거니까 우리가 도와줄 필요 없을 거고(다 요새 결혼식들은 축의금 장사같이 되어버린 느낌이 조금 있어서, 우리는 안 받고 소소하게 몇몇 지인만 모시고 하면 된다), 그리고..... 또 뭐하면 좋을까...
이런 식으로 의외로(?) 돈이 쓰일 데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것들을 다 이루고 죽으면 끝인가?라고 생각했을 때 이것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것들을 다 이루면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을까.
'상상하기'의 진짜 시작은 이제부터다.
나는 내 시간을 '나 스스로' 자유롭게 쓰고 싶다. 월급쟁이가 아니라 내가 내 시간의 주인으로 살고 싶다.
하루 8시간을 사무실 안에서 앉아있어야 하고, 점심시간도 정해져 있고, 지인과의 약속이 있었는데 회사일로 취소해야만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게 너무나 싫었다.
이 좋은 날씨에 광합성도 하고 싶고, 산책하다가 서점에서 책을 읽고 싶고, 어떤 때는 딱 한두 달 아무것도 안 하고 재충전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으면 좋겠고(그게 유급이길 바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무급으로라도 하루 연차 쓰는 게 눈치 보이는 거 자체가 이상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쳐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회사를 다니면 앞으로 그것들을 영원히 못하겠다는 겁이 났다. 그리고 그렇게 안정적이라 믿었던 회사도 내가 80~90세되었을 때까지 나를 고용해주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보육'이 나에게는 크게 중요했다. 결혼하고 나서 아이를 갖기 전부터 보육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다. 경력단절이란 말 참 듣기 싫지만, 왜 능력 있던 여성들이 당연히 누리고자하는 행복들 사이에서 고민해야 하는 게 '자신의 경력'인가에 대해서 분노가 치밀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들이 있다.
'둘 다 가질 수는 없다' '그래도 그게 현실이니까 어쩔 수 없어'
물론 다음 단계로 나가기 위해서 잡고 있던 줄을 놓아야지 새로운 줄을 잡을 수 있는 상황도 있겠지만, 그게 보육과 일이라는 두 관계 사이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많아지면 장차 그 아이가 국가 노동력에도 보탬이 되고 세금도 낼 것이다. 이런 저출산 시대에 아이를 낳아 세금 낼 국민을 늘리겠다는데 국가에서 엎드려 절하지는 못할망정 그런 엄마들이 아이를 키우기 어렵게 만들어 출산을 포기하게 만들다니 참 어처구니없다. 게다가 엄마들은 돈 때문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사회에서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적은 돈을 벌더라도 어쨌든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아이도 낳고 경제활동도 하면서 나라 경제를 살리겠다는데 그걸 도와주지는 않고 오히려 어렵게 하는 국가에 대한 분노가 일었다.
그리고 고3 때 죽어라 공부만 하다가, 대학교에 가서 비싼 등록금 내고 빚쟁이가 된 후에도, 취업을 못하고 있는 청년들을 보면 얼마 전까지의 나 같아서 안쓰러웠다. 대학교 졸업생은 그렇게 많은데 왜 모두가 정원이 정해져 있는 대기업에만 가려고 하지? 모두가 정직원이 될 수 없는 게 뻔한 상황에 비정규직인 사람은 왜 불행해야 하지? 왜 반드시 회사에 고용되어야만 하지? 정치가 잘 굴러가야 세상이 좋아지는데 결국 국민의 투표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데, 공부하느라 빚져서 갚느라 일하느라 바쁜 국민들이 무슨 여유가 있어 정치에 관심을 가질까?
불합리한 것들에 대한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런 질문을 내가 대학생 때 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때의 나는 설계 마감하느라 과제하느라 내 정체성 찾느라(?) 나랏일에 눈곱만치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취업하고 3년간 일하고 그 사이 결혼하고 나니까 비로소 이런 부조리함에 대해 고민할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럼 나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답답하겠구나. 항상 뭔가 화가 나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회사에 다니면서 내 시간을 온전히 내가 쓰지 못한 채로 월급만 저축해서는 내가 답답해하는 것, 내가 이루고 싶은 것들을 이룰 수 없겠구나 싶었다. 내가 돈이 생기면 하고 싶은 것들은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을 하고 난 뒤에 보상처럼 따라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테니, 먼저 이 쳇바퀴에서 내려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온전한 나로 있기 위해서.
내가 1인 기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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