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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엄마의 행복한 아이교육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하기 프로젝트

   내가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강하다는 걸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지극히 이기적인 사람이라 내 안위가 가장 중요했고 아버지는 당신의 인생을 너무나 잘 보내시는 분이기에 걱정할 게 없었다. 아버지와 나의 대화는 저녁을 먹는 동안에 주로 이루어졌다. 그냥 대화는 아니고 어떤 주제에 꽂히면 논쟁처럼 되거나 내가 분해서 일방적으로 씩씩거리며 울다가 아버지가 그만하자는 말을 꺼내면 끝이 났다. 사실 그만하자고 하면 내가 바로 그만두는 것은 아니었고, 내가 울었기 때문에 이 논쟁을 끝내는 건 안된다며 나는 아직 할 얘기가 남았다고 물고 늘어질 때도 많았다. 나는 아버지와 대화할 때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뭔가 분하고 억울해서 눈물이 나도 모르게 나오는데, 그것 때문에 이 논쟁에서 진 듯한 느낌을 받을 때 더더욱 분했다. 나는 지금 흐르는 건 눈물이 아니라 땀과도 같은 것이니 계속 논쟁을 이어가야 한다며 떼쓰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부끄러운 방식이었지만 내게 있어 그 당시에 절실한 무언가이기도했다. 내가 어떤 일를 잘 했거나 보통 기준으로 칭찬받지 않을까 하는 상황에서 항상 아버지는 '잘했다' 한마디뿐이셨다. 뭐 그렇게라도 말해주는 게 어디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겐 항상 부족했다. 하지만 못했을 때 왜 못했냐고 다그치는 분은 아니셨던 것 같다. 공부하라는 잔소리는 없었지만 잘했을 때도 당연하다는 듯 무심한 '잘했다'는 참 서운했다. 그래서 더더욱 칭찬받고 싶어 하고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나 사이의 논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좋게 마무리되는 경우가 거의 드물었다. 거의 양극단 진영의 의견 대립처럼, 아니면 어떨 때는 이런 생각마저 든 적이 있다. 아버지는 내가 내놓은 의견의 일부러 반대의 의견을 내놓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가끔 '그래 좋은 말을 했다' ' 좋은 이야기다'와 같은 말도 듣지만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대부분 나는 아버지가 나를 어린아이 취급하는 듯한 말을 들으면 발끈했고 내가 어떤 얘기를 논리적으로 해도 아버지라는 큰 벽에는 아무 영향을 못 미치는 느낌이 들곤 했다. 

   논쟁의 탈을 쓴 말다툼을 반복하던 저녁 식사자리를 가지기 어렵게 된 것은 부모님이 중국에 가게 되시면서부터였다. 성인인 자식 둘을 한국에 두고 부모님이 독립하시는 것과 같은 특이한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아버지와 두게 된 거리가 우리 관계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 거리를 둠으로써 함께 살 때보다 안부를 훨씬 더 자주 물었고, 울며 불며 싸우게 되던 논쟁은 Skype 화상 통화 상태가 안 좋아지면 강제적으로 종료되곤 했다. 그리고 나 역시 자연스레 기력 소모적인 논쟁은 되도록 안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함께 나누던 논쟁을 못하게 되자 나는 좀 더 깊은 이야기의 경우 메일을 통해 아버지와 주고받게 되었다.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나는 이것이야 말로 아버지와 나 사이에 필요했던 것임을 깊이 깨달았다. 예전의 나는 항상 아버지의 의견 패턴들이 익숙했기에 들어본 적이 있는 얘기다 싶으면 중간에 끊었고, 그런 나를 아버지는 못마땅해하셨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눈물을 흘리면서 언성을 높이면 대화를 중단하시는 아버지가 싫었다. 하지만 메일을 사이에 두고서는 그 누구 하나 흥분하거나 상대의 말을 끊는 상황은 없었고 나는 그제야 아버지 말씀들의 의미를 예전보다 깊이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메일로 주고받던 중,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있었다. ' 나는 요새 한 중국계 미국인 경제학자의 책을 읽었는데 그것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것을 나의 인생 책으로 삼아 읽고 또 읽으려 한다. 너는 바빠서 못하겠지만 만약에 기회가 된다면 그 책을 너도 읽어보기 바란다. 혹시 아니? 그것으로 인해서 너와 나 사이에 대화의 폭이 더 넓어질 수 있을지.' 그 얘기를 듣고 '너는 바빠서 못하겠지만'이라는 부분에서 발끈한 내가 있었다. 나는 왜 아버지의 말투에서 나를 약 올린다는 느낌을 항상 지울 수 없는지 모르겠다. 실제로 대놓고 약 올리시는 경우도 있고 엉뚱한 면도 있으시긴 하다. 그 부분에서 발끈한 나는 짧은 중국어 실력임에도 지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번역을 하면서 읽어갔다. 그러다가 너무 양도 많고 내용도 어려워 금방 포기해버렸지만. 그러다가 그 중국 경제책을 다시 집어 들게 된 게 그로부터 1년 후였다. 나는 요즘 '내 우선순위'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중에 꽤 높은 순위에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한 중국 경제 책 읽기가 포함된 것에 나 스스로가 놀랐다. 어쩌면 앞으로 함께 대화할 수 있는 날이 한 20년 남았을까라는 생각에 조바심이 났던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내가 틈틈이 할 수 있고 할머니가 되어서도 꾸준히 할 수 있지만 그때에도 부모님과 지금과 같이 좋은 의미로 티격태격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 생각이 들자 중국 경제 책 번역이 나에게 굉장히 중요한 프로젝트가 되어버렸다.

나와는 겪어온 시대도 환경도 전혀 다른 아버지를 나는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어느 중년 남성을 이렇게까지 이해하고 싶어 하는 것은 그 사람이 나의 아버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꼰대'로 불리는 중년의 어르신들과는 대화가 전혀 되지 않는다고 거의 무시하거나 외면하기 일쑤인 청년과 그들 사이에 따뜻한 이해가 싹틀 수 있는 가능성은 여기에서부터가 아닐까 하는 오만한 기대를 해본다. 나와 다름을 틀림이라고 치부하고 적대시하는 게 아닌 서로 이해하고 웃고 상생할 수 있는 삶을 꿈꾸는 내가 이상주의자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용감하게 겁도 없이 그대로 현실에 부딪혀보는 현실주의자라고 말하고 싶다.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한 발자국을 지금부터 조금씩 내디뎌보려 한다.


  지난번 아버지와의 통화에서 좌절을 겪고 나서 좀 더 괜찮은 시간대를 골라 통화를 시도해보았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꽤 괜찮은 타이밍이었다. 다짜고짜 물어보기가 좀 쑥스러워 오늘 기사화된 전기차 테슬라의 보급형 모델에 관한 이야기로 말문을 터봤다. 평소에도 전기차나 전기오토바이에 관심이 많으셨던 아버지는 이것저것 많이 얘기해주셨다. 얼마나 관심이 많으셨냐 하면 퇴직 전까지 빨간 전기오토바이로 출근하실 정도였으니까. 테슬라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오래 얘기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20분간 아버지만 말씀을 하고 계셨고 나는 좀처럼 아버지의 과거에 대해 자연스럽게 물어볼 타이밍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면허도 없는 애가 무슨 전기차냐고 하시며 부모님 두 분이서 나에게 합동 공격을 퍼부으셨다. 나는 지지 않고 이제 무인 자동차가 상용화될 시대라며, 나는 의도하진 않았지만 미래를 예견하고 운전면허를 따지 않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아버지와 하던 대화가 자연스레 두 분과의 대화로 오버랩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어머니하고만 대화하고 있었다. 아차. 나는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아버지는 대화에서 치고 빠지기가 대단히 자연스러운 분이셨다. 중요한 용건이 아니면 항상 '엄마 바꿔줄까?'라며 바통을 넘기는 건 대수고 '다른 용건은 없니?'라며 전화를 급하게 마무리 짓는데 선수셨다. 나는 아버지와 대화를 한 것이 아니라 20분이라는 시간 동안 아버지의 테슬라/전기자동차 강의만 들은 꼴이었다. 아버지와 제대로 대화를 하려고 열린 마음만 먹으면 일사천리로 내가 원하던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너무 아버지를 만만하게 본 것이다. 그렇다. 이제는 전략이 필요했다. 회사생활이나 프로젝트에서만 전략이 필요한 게 아니라 아버지와의 대화에서도 효율성에 기반한 전략이 필요했던 것을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타인을 인터뷰하듯 미리 요점 정리를 하고 통화버튼을 눌렀어야 했고 그 인터뷰도 20분이 채 넘어가면 안 된다는 중요한 제약도 있었다. 20분이란 시간은 아버지께서 대화를 기분 좋게 하시는 최장 시간인 것 같다는 나의 경험에 의한 수치였다. 가장 가까운 가족과의 대화를 만만하게 봤던 게 큰 오산이었다. 어쩌면 그 어떤 협상보다도 가까운 사람과의 협상이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하고 잘 알고 있다는 이유로 정신 놓고 이야기하다 보면, 항상 하던 레퍼토리가 반복되는 과오를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항상 쳇바퀴 돌듯 비생산적인 얘기만 반복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아버지와의 대화도 아버지의 대한 이해도 지금까지 한 지점에서 멈춰버렸던 것이다. 나는 점점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하기' 프로젝트를 진지한 '일'로써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난번에 아버지와의 짧은 대화에서 크게 좌절을 겪고 나자, 섣불리 시도를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겁을 먹고 말았다. 아버지는 은퇴 전과 비교하면 시간적으로 여유로워지신 듯하지만, 당신의 인생을 재미나게 보내시느라 나에게 아주 많은 시간을 내주실만큼 시간적 여유가 있으시진 않은 것 같다는 판단을 지난번 통화를 통해 내렸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질문만 하면 아버지도 짜증을 내실 테고(실제로 '그건 네가 알아서 책을 좀 보던지 공부를 해라'라는 말을 들었다. 현재 나는 매우 쫄아있는 상태다.) 나 역시 모르는 상태에서 질문만 한다는 건 돌아오는 대답도 대부분 알아듣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운 좋게 최근에 JTBC에서 시작한 '차이나는 도올'이라는 방송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KBS 명견만리의 김난도 교수 특강 몇 개도 다시 보기를 해보았다. 뭔가 중국에 대해 알게 된 것 같은 자신감이 조금씩 생긴 나는 혹시 그 방송들은 본 적 있으시냐고 전화로 여쭤보았다. 두 방송 모두 봤지만 아직도 중국을 잘 모르고 하는 얘기들이 많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아. 나는 이럴 때 답답함을 느낀다. 어떤 부분이 다른지 알려주면 좋은데 그런 말씀은 거의 안 해주고 잘못된 내용이 많다라거나 중국에 대해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 식으로 튕겨내 버린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명견만리에 나온 영국인 북한 전문기자 앤드류 샐먼의 '북한 개방의 게이트를 선점하라'편은 공감한다고 얘기해주셨다. 생각보다 내가 공부해야 할 것은 많은 게 아닐까 하는 겁이 났다. 쉽게 시작했다가 겁먹고 지금은 그 공부량에 대한 방대함에 기가 눌릴 지경이다. 내가 중국에 대한 이해가 아버지만큼 있어야지 그제야 아버지와 동등한 대화가 가능하게 되는 걸까. 그렇다면 그러기 위해서는 얼마나 걸릴까.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시작한 게 이렇게 큰 프로젝트가 돼버리다니 좀 막막했다. 아버지와 대화가 가능할 때가 되면 나는 아버지를 잇는 중국 경제 전문가가 되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김칫국을 마시면서 여러 고민이 들었다. 10년이나 아니 그 이상의 시간이 걸려버리는 건 아닐까. 내가 중간에 지쳐 버리지는 않을까.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 한평생을 공부하는 하는 사람들도 수두룩 할 텐데 난 겁 없이 뭐하는 거지. 단순히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어 한 것뿐인데 어쩌다가 이런 일을 벌여버린 걸까 하는 약간의 후회와 함께 말이다. 그래도 이상하게 해야겠다는 오기가 생긴다. 상대를 이해하려면 상대방이 관심 가지고 있는 것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의견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건 아니고, 한국에서 느끼는 중국에 대한 인식과 아버지의 의견을 바탕으로 나만의 시각으로 이해를 하고 대화를 하고 싶었다. 중국을 온전히 이해하기가 나에게 있어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 하기인 셈이다. 일단 아버지가 쓰신 경제칼럼부터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는 전혀 읽어 볼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나 스스로에게 놀랐다. 읽어도 바로 이해가 가지는 않겠지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여러 번 읽다 보면 대화 속에서 그 얘기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내 것으로 소화가 되어서 자연스러운 질문과 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본다. 

참고 자료 : JTBC 차이나는 도올

                   KBS 명견만리 -  150312 차이나 3.0 1편 두려운 미래 중국 주링허우 세대(김난도 교수)

                                              150313 차이나 3.0 2편 중국발 쓰나미 생존의 조건 (김난도 교수) 

                                              151008 저성장 시대 생존법 2부작 1부 (김난도 교수)

                                              151009 저성장 시대 생존법 2부작 2부 (김난도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