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비우기에 매료되었을까. 왜 비우려고 할까. 더 많은 걸 채우기 위해서? 마음의 짐을 덜고 싶어서?
나는 언제부터 답답함을 느꼈던걸까. 비우기를 올해 목표로 삼게 된 이유는 뭘까 생각해봤다.
영화 팜플렛, 향초, 캔버스, 스크린샷, 책, 냉장고, 옷
영화 팜플렛 :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생 초까지 심했던 것은 영화 팜플렛 모으기였다. 이미지를 모아 영화 후기를 쓸 때 오려붙이고 싶었고, 보고 싶던 영화는 후에 자세히 읽어보려고 차곡차곡 내 방에 쌓아놓았었다. 마치 겨울나는 동물이 곡식을 저장하듯 쌓아두었었다. 방 정리를 하면서도 팜플렛만큼은 계속 잘 버리지 못했다. 후에 쓸모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너무 많이 쌓여 책장의 한켠을 차지하게 되자 큰 마음 먹고 버렸다. 버릴 때도 통크게 버리지 못하고 한장 한장 분리해서 정말 보고 싶은 영화만 따로 리스트를 적어 놓았다. 그 후 그 리스트를 열어보는 일은 거의 없었다.
향초 :
나는 향초를 좋아했었다. 독한 향만 풍기는 디퓨저보다 은은한 불빛을 보면 힐링되기도 하고 냄새를 태워 없애주는 것도 맘에 들었다. 향초에 관심가지게 된 후부터 비싼 가격의 고급 향초에 눈이 갔다. 비싼 것을 일부러 찾은 것은 아니었지만 예쁜 향초는 다 비싸서 눈만 높아져버린 것이다. 괜히 사지도 않을 거면서 향을 테스트해보기도 하고 향초브랜드를 보면 두군거리기도 했었다. 향초를 사면 내 삶이 럭셔리해지는 것과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러다가 신혼여행을 하와이로 가면서 면세점에 들러 신나서 고가의 향초를 2개 구매했다. 언젠가 뜯어야지하며 고이 모셔두었지만 그 언젠가가 2년이 지난 아직까지 오지 않고 있다. 6개월된 아이에게 좋지 않을까봐 초 자체를 켜는 일이 없다.
캔버스 :
항상 뭔가 부족한 기분이 들었다. 답답하기도 하고 마음을 힐링할 무엇인가를 계속 찾아해맸다. 그러다가 수채화로 캔버스에 색칠하는 그림세트를 구매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싼 금액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 나의 스트레스를 풀어줄 금액으로는 적당하다고 생각했었다. 답답한 내 마음을 풀어줄 '적당'한 날을 기다렸으나 지금은 잊혀진지 오래되어 구석에서 먼지가 쌓인 채 놓여있다. 이쯤되니 나에게 화가 난다.
스크린샷 :
정보를 모으는 것을 좋아한다. 즐겨찾기, 스크린샷, 폴더에 저장 등 정보에 대한 나의 저장 강박은 꽤 심했다. 즐겨찾기는 기본이었고 사이트가 없어질 수 있으니 그것보다 더 확실하게 스크린샷을 찍는 것을 선호한다. 오죽하면 휴대폰은 사진을 찍는 것보다 스크린샷을 찍는 용도로 더 많이 사용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찍은 정보들은 나의 노트북 폴더에 들어가 나뉘어진다. 의, 식, 주, 정화, 흡수, 집중 이 6가지 카테고리에 넣어둔다. 단연 흡수 폴더에는 여러가지 장르의 정보가 가득하다. 언젠가 배우고 싶거나 필요할 때 유용한 지식들이 가득있고 여러 장르가 있기 때문에 세분화한 폴더가 한가득이다. 정화 폴더에는 웃기거나 인물사진, 마음을 비우고 쉴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정보나 건강, 고양이, 음악 등이 있다. 집중은 내가 손으로 만들기를 하고 싶다거나 직업에 대한 고민, 글쓰기 등 무엇인가를 실행하려고 하는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것들을 모아놨다.
스크린샷을 찍어넣고 그것을 분류해서 폴더에 넣는 것도 꽤 많은 시간을 소요한다. 그리고 나눈다음에 또 그 폴더에서 세부 폴더로 나누는 것도 말이다. 그렇게 찍고 저장하고 분류하고가 내 일상이 되던 어느날 큰 일이 벌어졌다. 업데이트를 하던 중 맥북이 먹통이 된 것이다. 나는 머릿속이 깜깜해졌다. 아 그 많던 나의 유용한 정보들..아까운 정보들 어떻게 하지. 너무 슬프고 막막했다. 데이터복구를 하러 갔을 때 살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리고 비싼 복구비용을 요구해왔다. 나는 그정도는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모두다 복구된다면...
집에 와서 복구가 안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하다가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많은 유익한 정보들을 애지중지했으면서 만약 복구되는 자료가 일부라면 제발 인물사진들만이라도 복구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이건 자료가 날라가기 전이라면 전혀 알수없었을 것이다. 나는 나에게는 정보가 최우선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아깝지 않았다. 그걸 제대로 사용도 못하고 쌓아만 둔 것은 진짜 내 것이 아니었다. 이번처럼 하루아침에 날라갈수도 있는 자료들이었다. 하지만 추억이 담긴 인물사진은 달랐다. 그것만은 살리고 싶었다. 간절하게.
며칠이 지나 복구가 되었다고 연락이왔다. 꽤 많은 내용이 복구가 되었고 거의다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내가 정보보다 추억을 더 소중히 한다는 것을 노트북이 먹통이 되고 나서야 안 것이 충격이었다. 그리고 정보를 활용도 못하고 쌓아만 둔 내게 크게 놀랐다.
책:
나는 책을 좋아한다. 마음에 드는 책을 한참동안 아이쇼핑하듯 서점을 한바퀴 돌며 고른 다음 사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그런데 사고 나서는 언제든지 볼 수 있으니 책장에 꽂아두고 안읽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렇게 좋아하고 읽고 싶어서 산 것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그냥 소유하고 싶었는데 소유하고 나서는 읽지를 않았다. 차라리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오면 1~2주 후에 돌려줘야하니까 어쩔 수 없이 빨리 읽게 된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책을 사는 경우는 친구에게 선물해줄 때나 두고두고 읽으며 정보를 찾아야하는 요리책같은 책말고는 사지않게 되었다. 그리고 기존에 있던 책들을 읽어서 소화시켜버려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책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가 알라딘 중고서점에 팔게 되었다. 나는 책을 접거나 낙서하며 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거의 모든 책이 상태가 최상이라 꽤 높은 값으로 팔렸다. 책들을 팔고 놔두고 싶은 책만 있으니 그 책들을 읽고 싶어졌다. 많이 쌓아만 둘 때는 별로 신경이 안쓰이니 없는 것보다 못했다.
냉장고 :
냉장고에 이것저것 들어있으면 먹지않아도 마음이 풍족했지만 문제는 썩는 것이었다. 신선해야 할 음식들이 썩어가거나 오래되어 냉동실에 있는게 싫었다. 냉장고가 약간은 공간이 널널하게 비어있는 상태가 기분이 좋다. 내게는 집앞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나의 찬장같은 느낌이다. 신선한 음식들만 보관해놓는 부엌찬장. 쌓아둘 때는 먹고 싶은 생각이 덜한데 없으면 먹고싶다. 그래서 먹고 싶은 그때그때 장을 본다. 이틀에 한번이나 그날 하루 끼니에 먹을 재료들만 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집 냉장고는 참 작다. 이사올 때 기존에 있었던 227L짜리다. 처음에는 내가 산 것도 아니고 오래되었으니 빨리 바꾸고 싶었다. 음식을 넣을 자리도 넉넉치않으니 불편했다. 그런데 지금은 작은 공간이 더 좋다. 많이 넣으려고해도 안들어가니 조금만 넣고 신선한 것만 넣었다. 안이 작아 잘보여 뭘 넣었는지 잊어버릴 일이 없다.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 때 냉장고에 음식이 썩어가는게 너무너무 싫었다. 지금 내가 관리할 수 있어서 기분좋다. 내가나자신이 먹을 것을 컨트롤한다는 게 꽤 기분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삶의 주도권이 있다는 기분 좋은 느낌이 든다.
옷 :
예전부터 외출 준비시간이 길었다. 다급하게 준비하고 뛰어가는 게 싫어 느긋하게 준비하려고 하는데 입고갈 마땅한 옷을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옷을 산다. 옷 정리를 해도 옷장은 항상 엉망이다. 나갈 준비를 하면 또 입고갈 옷이 없는 거 같다. 그래서 또 옷을 산다. 이런 반복이 싫었다. 좋아하고 내게 어울리는 옷을 잘 관리하고 오래도록 입고 싶었다.
쌓아두고 활용못하고 있다는것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참 여러가지 분야에서 골고루 나는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반복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좋은 것을 오래도록 보관하고 싶었다. 내 머릿속에 넣어 잘 활용하고 싶었던 것이다. 언제든지 꺼내쓰고 유용하게 쓸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결국 난 '통조림'을 만들고 있었다. 그건 절대 썩지도 않고 몇 십년을 버티겠지만 전혀 신선하지도 않고 그걸 먹는다고 내 건강에 이롭지도 않다. 난 신선하지도 않는 통조림들을 활용은 커녕 쌓아만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계속 새로운 통조림을 만들고 있었다.
온전히 내 관심을 끈 것들을 소화시켜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비우기를 찬양한다. 비우기의 끝에 나에게 최종적으로 무엇이 남을까. 나에게 남아 있을 것들을 잘 닦아 반짝반짝 빛이 나게 관리를 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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