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8평 원룸에서 남편과 아이와 셋이서 살고 있습니다.
미혼일 때는 원룸이 혼자 살기에만 적합하다고 생각했었지만 결혼을 생각할 즈음에는 둘이서 살아도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원룸이더라도 8평은 혼자 있으면 가끔 쓸쓸할 때가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원룸은 둘이서 살기에 참 적합한 것 같다고 생각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아이가 생기면 아이가 기어 다니기 전까지나 괜찮지 그 후에는 적어도 방 2칸짜리로 옮겨야겠다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아이가 19개월이 되었고 어린이집도 잘 다니고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그 원룸에 살고 있고요. 지금은 나름 셋도 원룸에서 살기 괜찮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요새 들어 그런 생각이 듭니다. 8평은 몇 명이서 살기에 적합한 크기인 걸까 하고요.
저는 지금 둘째 계획도 하고 있는데 둘째가 태어나서 가족이 네 식구가 되어도 지금 집은 살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대신 침대를 추가하고 집에 추가적인 기능(!)을 입혀야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그 추가적인 기능이란 원룸의 공간을 방음 파티션(이건 제가 원하는 기능이 다 들어있는 가벽인데 가능할지 아직 미지수이지만 전 시도하고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는 공대녀라서...)으로 나눈다거나 두 번째 침대를 벽에 세웠다 내렸다 할 수 있는 도르래 장치(이건 아직 자신 없지만 제 상상 속에서는 이미 멋지게 돌아가고 있다고요 찡긋)를 말합니다.
아니 그런 걸 만드느니 이사를 가라고 하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이상한 사람인가 봐요. 지금 당장 30평대형 아파트에 이사 갈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고 해도 주저할 것 같습니다.
그 이유를 말씀드릴게요.
첫째, 청소해야 할 공간이 늘어나는 게 무섭습니다. 30평 대라면 거실도 있고 방이 3~4개가 될 텐데 저는 그 공간을 매일 청소할 자신이 없습니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전업주부이신 우리 엄마니까 그걸 묵묵히 해내신 거지 저는 그걸 해낼 수 없는 사람이 분명하다고 제스스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청소할 시간에 책 한 페이지라도 더 읽거나 누워서 쉬고 싶거든요. 그만큼 저는 게으르기 때문에 제가 다 해낼 수도 없을뿐더러 그것만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더러워진 집안을 무시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기에는 간이 콩알만 하고요.
둘째, 공간이 늘어난 만큼 짐도 늘어나는 게 싫어서입니다. 미니멀리즘 관련 책들을 읽다가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느낌을 받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꽤 많은 공간을 짐들을 보관하는데 쓰고 있다고요. 짐이 줄어들면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은 훨씬 넓어지고 쾌적할 텐데 1년에 한 번 쓸까 말까 한 물건들을 집안에다가 '모셔'놓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 넓은 집을 유지하기 위해 뼈 빠지게 대출금을 갚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만약 원룸에 살다가 30평대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면 가장 먼저 가구들을 살 것 같았습니다. 그 공간에 어울리는 멋진 가구를 사기 위해 우리는 더 큰돈을 쓰고 더 많은 시간을 괴롭게 보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셋째, 각 공간이 낭비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게 슬퍼서입니다. 제가 이런 걸 느끼게 된 건 우연이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저희를 두고 독립(?)을 하신 것과 같은 생활을 잠시 한 적이 있었어요. 우리는 다섯 식구가 살기에 적합했던 방 네 개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부모님이 해외에 나가게 되시면서 나와 동생은 잠시 동안만 새 집이 구해질 때까지 방네칸짜리 아파트에 둘이 살게 되는 경험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넓어서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를 기억하면 저는 이런 생각들만 남았습니다. 넓어서 휑하다. 불 꺼진 방에 들어가는 게 무섭다. 등등. 저와 동생은 각자 학교 생활을 하고 저녁 즈음에 집에 오곤 했는데 저는 자기 전까지 항상 거실에서 지냈습니다. 전체를 볼 수 있는 중간지점에 있다는 게 안심이 되었고 큰 소파가 있었으니까요. 그 시기 동안에 우리는 바빠서 안 쓰는 방을 청소할 생각조차 못하고 지냈습니다. 그때 이런 감정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필요한 공간을 알차게 쓰고 싶다'라고요.
그리고 복층 구조의 집에서 잠시 생활했던 적도 있었는데 그전까지는 다락방이니 높은 천장의 집을 동경해왔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살고 나서 그런 생각이 싹 가셨습니다. 밥 먹을 때마다 계단을 내려가고 방에 가려면 다시 올라가는걸 하루에도 수십 번을 하다 보니 물건을 위층에 놓고 왔을 때 짜증이 밀려오더라고요. 그때 느꼈습니다. 아, 나는 다시는 2층 집에서 안 살아야지. 계단 한 개도 오르내리기 싫다라고요.
넷째, 홍콩의 미니멀 주택을 본 이후로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홍콩의 집값이 어마 무시하다는 건 다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곳을 한 부부가 작지만 알차게 고쳐놓은 사례를 본 적이 있습니다. 집안이 마치 트랜스포머처럼 변화하는데 그게 저는 멋져 보였고 가슴이 두근두근했습니다. 일본도 협소 주택이 유행하고 있는 게 다 집값이 어마어마하기도 하지만 도심의 문화생활을 놓치기 싫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서점을 참새 방앗간 드나들듯 하는 사람으로서 아무것도 없는 도심 외곽에서 의리의리 한 궁전 같은 곳에서 산다면 내가 즐겁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8평에서 아이 셋까지 낳아 키울 수 있을까 모험을 하려고 합니다. 왜 이게 모험이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역시 아이가 크면 각자 방은 만들어줘야 되지 않나라는 주위의 얘기들 때문에 조금씩 흔들리는 마음도 한구석에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집에 오면 각자에 방으로 휑하고 들어가서 문 닫아버리는 집보다 구석구석 잘 사용하고 복작복작 살 부대 끼며 도란도란 수다 떨 수 있는 8평 집에서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저는 너무 괴짜일까요? 집안을 나만의 트랜스포머처럼 가꾸어가는 재미는 정말 일반 가정집을 셀프 인테리어 하는 것보다 더 머리 싸매고 이런저런 기능을 생각하느라 훨씬 짜릿한데 말이지요. 앞으로 제가 어떤 방식으로 우리 집을 가꾸어 나갈지 저도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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