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와 베짱이 이야기가 요즘 세상에서도 통할까. 동화책 '프레드릭'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개인적으로 '프레드릭'은 내가 기대한 것만큼 좋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베짱이는 게으르고 개미는 성실하다라는 표본이 깨졌다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부지런한 사람은 무조건 좋은걸까. 나는 '무조건' 좋은 줄로만 알았다. 그리고 그게 깨진 것은 회사에 다닐 때 타부서 부장님으로 받은 하나의 질문때문이었다.
"부지런똑똑/부지런바보/게으른똑똑/게으른바보 중에서 누가 가장 좋을것 같아?"
나는 당연히 부지런하고 똑똑한 이가 최고로 우수한 사람이라 대답했다. 그러자 부장님은 부지런한데 똑똑한 사람은 부지런히 움직여서 일을 처리하겠지만 게으른데 똑똑한 사람은 부지런히 움직이는 게 귀찮으니 어떻게 하면 한꺼번에 일을 처리할까 생각한다고 했다. 전체 프로세스를 단순화시키고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시스템을 바꾸려고 한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머리를 얻어 맞은 것만 같았다. 나는 끊임없이 부지런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게 미덕이고 게으른 사람은 부도덕한 것처럼 마음 속에서 비난하고 있었다.
이 얘기를 듣고 나서 나는 부지런한 똑똑이보다 게으른 똑똑이가 되어야겠다 생각했지만 구체적인 실행은 하지 않고 있었다. 단지 내 속의 무언가에 균열이 가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리고나서 몇 년 후 '보자아빠 가난한 아빠'와 채사장의 '시민의 교양'을 읽고 월급을 받는다는 것, 지금까지의 교육시스템에 대한 모든 것이 와장창 깨졌다. 이런 걸 이제야 알다니 나의 무지함에 충격받았고 이제라도 알게 되어 안도했다. 영화 매트릭스 속 빨간약을 먹은 것만 같다고 하면 상투적으로 들리겠지만 정말 그랬다. 그 후로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돈공부를 하면서는 더 많은 것이 깨졌다. 내가 피고용자의 입장에 있을때의 모든 불만이 또 다른 형태의 생각으로 옮겨갔다. 정부며, 대기업이며, 부자들에 대해 화가 났었는데 누군가에 기대지 않고 누군가탓을 하지 않고 내가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사회 문제를 보는 시각자체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무조건적인 복지사회에 대한 동경에서 이제는 개인이 어떻게 하면 이기적인 이타주의자가 될까, 그런 사람들의 커뮤니티를 만들까, 그런 사람들과의 협업이 기대되었다.
게으르다는 말에는 여전히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다.
게으르다 : 해야 할 일을 하기 싫어하거나 애쓰지 않는 성미와 버릇이 있다.
해야할 일이라는 게 무엇일까. 애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누가 해야할 일을 정하는 걸까.
부지런함에 대해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좋은 습관이 굳어져 꾸준하다는 의미에서 부지런한 것은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의미없거나 별로 좋지 않은 일을 부지런하게 하고 있다면 그것만큼 위험한 것 또한 없을 것이다.
게으름과 부지런함, 마누시 조모로디의 책 '심심할 수록 똑똑해진다'에서는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이는 창의적일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지루하고 심심한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 뇌는 깨끗히 청소되고 잡다한 정보를 정리하며 공간을 넓힌다. 창의적이고 싶다면 심심한 시간을 보내야한다. 스마트폰 사용으로 한시도 지루할 틈이 없는 우리는 점점 바보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더욱 게으르기 위해 나는 공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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