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0. (p,234)
잡지 기사에서 발췌한 내용들
- 산업형명과 함께 장시간 노동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산업혁명이 시작되자 사정은 완전히 달라졌다. 농사지을 땅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이제 죽어라 공장 일에 매달려야 했다.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의 임금을 받으면서 하루에 열 네시간에서 열 여덟 시간을 일했다는 기록은 산업협명기부터 19세기까지의 문서들에서 수두룩하게 찾아볼 수 있다. 그토록 긴 시간 노동을 해야했으니 사람들은 살아도 사는 것 같지가 않았을 것이다. 일하는 기계가 아닌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는 적절한 휴식과 취미를 위한 여가 시간이 필요했다. 가족과 대화를 나누고, 공동체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재충전을 하기 위해서는 일하는 시간을 줄일 필요가 절실했다.
- 노동 시간을 줄이기 위한 투장이 이어졌다
영국의 사회 운동가 오웬 (1771~1858)은 1817년에 '8시간 일하고 8시간놀고 8시간 쉬기' 운동을 시작했다. 이 운동은 많은 노동자들의 지지와 참여 속에 사회전반으로 퍼져나갔고 영국에서는 1847년에, 프랑스에서는 1848년에 열시간 노동제가 정착되기에 이름다.
1886년 5월 1일 미국의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평화행진을 했다. 공장주들은 기겁을 했다. 경찰을 동원하여 시위하는 노동자들을 때리고 총으로 쏘기까지 했다. 이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이 시카고의 헤이마켓에 30만 명이나 모였다. 그런데 여기에 갑자기 폭탄이 터지면서 200여 명의 노동자와 6명의 경찰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리고 이 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된 7명의 파업 지도자들은 사형을 당한다. 1889년부터 이 비극적인 사건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파업이 시작된 5월1일을 노동자의 기념일로 정했다. 지금도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5월1일을 노동자의 날(메이데이)로 기념하고 노동자가 쉬는 날로 정해 놓았다.
1919년에 국제노동기구(ILO)가 생겼다. 국제 노동기구에서는 노동조건에 관한 국제기준을 정했는데 이 때 비로소 8시간 노동제가 국제적인 기준으로 정해진다. 오웬이 여덟시간 노동제를 주장한지 100년 넘게 흐른뒤였고, 헤이마켓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은 때로부터 20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우리나라는 1953년 근로기준법이 만들어지면서 법적으로는 8시간 노동제가 도입되었지만 그림의 떡일뿐이었다. 법과 현실이 완전히 달랐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터에서 장시간 노동을 했다. 십대 여성 노동자들이 '타이밍'이라는 잠을 쫓는 알약을 먹어가며 재봉틀을 밟는 나날이 이어졌다. 1991년에 비로소 국제 노동기구에 가입하고 노동시간의 국제 기준인 8시간 노동제를 지키게 되었다. 현재는 하루 8시간, 주 40시간 5일 노동이 우리나라 노동시간의 표준이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8시간 노동제를 완전히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 8시간 노동이 표준은 아니다
모든 나라가 8시간 노동이 표준인 것은 아니다. 네덜란드와 스웨덴은 하루 6시간 노동이 표준이다.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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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노동 시간에 대한 자료들을 읽고나서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고민하는 것들이 말이 안되는 얘기가 아니라는 걸 말이다. 오히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들을 찾으니 더 용기가 났다. 내가 게으르거나 조직부적응자여서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위해 shift change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때부터 나의 꿈의 씨앗은 땅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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