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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덕후의 독서

내가 책에 빠지게 된 계기

나는 중학교 때까지 책을 거의 읽지 않던 아이였다. 중학교 2학년 때 그래도 책 좀 읽어보고 싶어서 과학 선생님한테 책 좀 추천해달라고 했는데 돌아온 답변은 '추천해주기 어렵다'였다. 나의 담임 선생님으로 나를 1년간 보아왔다면 나에게 부족한 요소가 무엇인지 파악을 해서 추천해줄 수가 있겠지만 그러지 못했으니 추천해주기 어렵다는 얘기였다. 


맞는 얘기지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무척이나 섭섭했다. 그래도 추천해주기 어렵다는 답보다 '서점에 가서 네가 마음의 드는 표지나 제목 아무거나 집어서 읽어보렴'이 더 나은 답변이었을텐데라는 생각을 지금 해본다. 결국 누군가가 추천해준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게 확실하다. 그러니 내가 좋아하는 건 내 힘으로 찾는 게 맞긴하다. 그래도 그 때 선생님의 대답은 서운하긴 했다. 


그 답변을 받고 나서 실망한 나는 책을 읽지 않았다.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갔는데 고1 때 독후감을 썼는데 담임이 '너 정말 글을 못쓰는구나'와 같은 얘기를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상처받았다. 그래도 뭐 갑자기 잘 쓸 수는 없으니 그냥 별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국어선생님한테 글을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 선생님은 총각같은 유부남 선생님으로 선한 이미지에 바른청년같으셔서 인기가 많았다. 국어 선생님은 '영화든 만화든 무엇이든 본 다음에 글을 써보는 게 중요하다'고 해주셨다. 


'뭐든 써봐라'




이 말이 나에게 뭐 그리 특별했을까. 특별할 것 하나 없는 그 말이 그 당시 나에게는 특별하게 꽂혔던 것 같다. 그 이후로 그림이 많은 에세이집같은 접근하기 쉬운 책부터 도서관에서 읽고 마음에 드는 글귀가 있으면 받아적곤 했다. 그리고 계속 적다보니 내 생각도 가끔 끄적이게 되었다. 그러다가 에세이말고 마음에 드는 제목의 소설을 읽어보기도 했다. 그 때 한창 일본소설 붐이어서 요시모토 바나나같은 일본 소설가의 책들을 찾아봤다. 문체가 간결하고 책도 별로 두껍지 않아서 읽기 쉬웠다.


계속 읽다보니까 일본 소설 특유의 건조하고 어떨 때는 알 수 없는 심리 묘사가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본 소설말고 다른 책들을 찾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책의 제목을 아이쇼핑하듯 서점에 들낙날락거리는 게 취미가 되었다. 제목이 마음에 들면 한 번 집어서 훑어보고 재미있을 것 같으면 읽었다. 그러다가 비슷한 류의 책들을 또 이어서 읽고 하다보니 그 때 그때 내가 고민하는 것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책을 찾아 읽고 있었다.


책의 좋은 점은 내가 그만 읽고 싶을 때 덮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고민 상담을 할 때 상대방과 얘기하다가 '아 잠깐 나 급한 일이 있어서 이제 그만 들을게'라고 할 수 없는데 책은 그게 가능했다. 내가 그만 보고 싶을 때는 그만 볼 수 있었고 얘기가 지루하다 싶으면 다른 책으로 갈아탈 수도 있었다. 책은 나에게 좋은 상담 선생님이자 친구였다. 


책을 읽기 전에는 나에게 좋은 멘토가 있었으면 하면 생각을 자주 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는 멋진 언니들을 동경하면서 나도 친언니가 있었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러다가 중학생이 되니 나의 고민을 해결해줄 선생님을 찾아 헤맸다. 동경한 선생님은 계셨지만 그렇게 나에게 완벽한 해답을 주지는 못하셨다.


그러다가 나는 책이라는 멋진 멘토를 만나게 되었다. 진부한 얘기일 수 있지만 그 진부함이 진리라고 느껴질 만큼 나에게는 큰 일이었다. 내가 나에 대해 이해가 잘 안될 때, 머릿 속이 복잡할 때, 다른 사람의 의견이 궁금할 때 나는 책을 읽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그렇게 책을 많이 읽었다기 보다 매체를 보고 느낀 점을 끄적이는 걸 더 많이 했다. 그러다보니 더 책이 궁금해졌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글쓰는걸 즐기고 있었고 내 생각을 정리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산책 겸 서점으로 가서 아이쇼핑하듯 책을 고르는 게 취미이자 휴식이다. 나에게 말걸어오는 제목, 내 관심을 끄는 제목이 눈에 띄면 그 자리에서 집어서 약간 읽어보고 후에 읽을지 여부를 정한다. 나에게 휴식시간이 주어진다면 이걸 하루에 1시간반에서 2시간은 가능했으면 한다. 그래서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책을 볼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려고.


만화책만 읽던 내가 책에 빠지게 된 계기는 참 신기하고도 우연이었던 것 같다. 나는 유치원 때부터 삼국유사를 전래동화읽듯이 재미있어 했던 여동생이 그렇게 부러웠었는데 동생은 지금은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여 거의 책을 못 읽고 있다. 그렇다고 휴식시간이 생긴다고 해도 책을 읽지는 않는 것 같다. 책을 못 읽고 있다는 죄책감만 무거워지고 타임푸어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듯해 보인다. 많은 현대인들이 책을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못읽고 있는 이유는 비슷한 것 같다.


책에 대한 무거운 죄책감은 내려 놓고 그냥 아이쇼핑하듯 즐기는 게 책과 오래도록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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