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펜을 잡고 나의 노트에 글을 그적였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지금처럼 10년 넘게 이렇게 글을 쓰게 될 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처음 펜 잡은 날 내가 1년 후에 글을 아주 잘 쓴다는 칭찬을 받게 될 줄도 몰랐을 것이다.
쑥스럽지만 한창 감성이 폭발하던 고2 시기의 나의 첫 글을 옮겨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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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5.22. 토
처음으로 이런 글을 써 보는 것 같다. 학교 숙제로 늘 귀찮았던 독서 감상문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던 생각들을 그대로 옮겨 적는 그런 글... 일기와는 다르다. 매일매일 써야 한다는 강박 관념도 없고 시간이나 분량 제한도 없다.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펜을 잡은 건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기에 무척 설렌다. 글 쓰는 게 설레다니... 참 묘한 느낌이다.
책에 대한 감상 후기를 쓰게 된 계기는 문학 선생님이었다. 언어영역 공부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하려고 찾아뵀는데 뭐든지 읽고 나서 글로 써봐야 남는다는 말씀에 귀가 번쩍 뜨였다.
지금의 나) 글을 잘 쓰고 싶어서 문학 선생님께 물어보러 간 게 아니라 언어영역 성적이 안 올라서 물어보러 간 거였구나. 안타깝게도 등급에 일희일비하는 수능 수험생이었던 나였구나. 시작은 수능을 위해서였지만 그게 지금의 나에게는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이었다는 게 지금에 와서는 놀라울 따름이다.
왜 지금까지 자주 들어왔던 말인데 이제야 그 중요성을 깨달은 것일까. 어쨌든 지금 나는 평소에 아껴 두었던 '클래식 푸'가 그려진 소박한 스프링 노트를 꺼내 나의 이야기를 쓰려한다. 며칠 지나 구석에 처박힐 노트가 아니라 나의 소중한 보물 중 하나인 노트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의 나) 구석에 처박히기는커녕 이 첫 번째 나의 노트를 시작으로 몇 권째인지 모르겠다. 10년 넘게 써오고 있는 나의 노트가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줬다.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겠지. 참 신기하다. 그 당시의 나와 대화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첫 페이지라 서론이 길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책 이야기로 들어가 볼까?
지금의 나) 나 혼자 보려고 쓰던 글이라 그런지 매우 오글거린다. 이불 킥 날리고 싶다. 차라리 강유미처럼 책 속으로 GO GO! 라며 개드립이 나을 수도... 아 그때는 그 프로가 없었나....
'29세의 크리스마스' 처음에 학교 도서실에서 보았던 이 책 표지는 그다지 나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보나 마나 노처녀의 사랑타령이겠지..'하고 단정 지었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 책에 푹 빠지게 되었다. 그것도 심각하게!
지금의 나) 이 책을 읽고 난 한참 후에 이 책이 영화'싱글즈'의 원작 소설이었다는 걸 알았다. 고2 때부터 나는 나의 반쪽을 찾아 헤맸었던 것 같다. 그리고 왠지 모르겠지만 내가 노처녀로 늙을까 봐 조마조마했었다. 그래서 미래의 내 모습일까 봐 이런 골드미스의 사랑 이야기에 고등학생 때부터 환장했었나 보다. 지금은 내 반쪽을 만나서 딸 둘이 있지만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항상 외로웠던 것 같다. 그때의 나를 토닥토닥해주고 싶다.
노리코, 아야, 켄 이 세 친구들의 이야기는 연애담으로만 흘러가는 게 아니어서 더욱 매력이 있다. 노리코는 패션 머천다이저(어떤 직업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였는데 상사와의 마찰로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인 레스토랑 점장을 맡게 된다. 그런데 자신에게는 이 일이 맞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노리코는 능력을 인정받아 더 좋은 조건에서 스카우트된다. 노리코에게는 그녀가 몰랐던 재능이 레스토랑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지금 나에게 있어 무엇이 가장 맞는 것인지 고민되고 갈등되는 때에 노리코의 이야기는 용기가 되고 희망이 되었다. 멋진 커리어우먼의 모습을 보여 준 노리코. 나도 그녀처럼 당당하고 멋지게 될 수 있을까?
지금의 나)이 때도 나는 뭔가 내가 커리어우먼으로 뭔가 성공한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꿈꿨었나 보다. 서른에는 이미 그런 사람으로 자리 잡고 있겠지라는 막연한 환상이 있었는데 서른이라고 다 이룬 어른이 아니라는 걸 지금에서야 알겠다. 그리고 그 당시에 마음 한편에 일을 잘하면 연애는 뒷전이거나 연애를 못하고 결혼도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도 가지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둘 다 포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니까. 그때의 나에게 둘 다 잘 해낼 수 있다고 얘기해주고 싶다.
키사와의 사랑도 무조건 해피엔딩으로 끝나버리는 시시한 연애소설과는 달리 서로의 인생을 위해서 격려하고 앞으로 만날 날을 기약하는 이별로 끝을 맺은 것도 마음에 들었다. 미혼모로 살아가겠다는 아야의 생각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나 역시 그녀를 응원하고 싶다. 켄이 카나와 잘 된 것은 약간 마음에 안 들었지만 말이다.
지금의 나) 이 때도 나만의 사랑에 대한 가치관이 뚜렷했었구나.
행복 속에 콕콕 찾아드는 불행,
불행 속에 콕콕 찾아드는 행복,
어느 게 좋아?
아야가 켄에게 한 말이다. 아야는 불행 속에 느닷없이 오는 행복이 좋다고 했다. 나는 과연 어느 쪽이 좋은 걸까? 행복 속에서 불행이 온다면 너무 큰 충격일 것 같다. 나 역시 불행 속에 오는 행복이 더 좋은 것일까? 이 글귀가 계속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쓰다 보니 한 페이지를 훌쩍 넘겨 버렸다. 손은 약간 아프지만 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상쾌한 기분이 좋다.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좋다. 앞으로도 더 좋은 문학과 접할 기회가 자주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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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재미있다. 과거 고2의 나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아서 즐겁다.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