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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엄마의 행복한 아이교육

일본에서의 추억


2013.3.10. ( 성냥갑 black p.245 )

되게 행복하다.
행복이란 건 내가 늘 원하고, 찾으려고 필사적으로 달려들게 만드는 ‘무엇인가’인데 그건 이미 다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일본에서의 추억은 단지 내가 얻은 ‘지나간 추억’일뿐이라고 생각했고 이루어질 수 없지만 늘 그리워하는 ‘꿈’이라고 생각했다.

꿈에서도 보고 싶고 눈물나고 그렇지만 현실에서 가능할거라고 생각조차 안해서 그다지 절실하지도 않았던 꿈이었다.


일본으로 출장가는 게 정해졌을 때도 일본 도쿄라는 도시를 서울 도시 나들이처럼 정복하고 싶은 기대와 일본음식을 마음껏 먹고 아야지하는 기대들뿐이었다. 가서 시간이 남고 개인시간을 가져도 된다는 분위기를 알아차린 다음에서야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고 싶고 메구로에 가고 싶다고 느꼈다.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거라는, 만나고 싶다는 기대보다 메구로라는 동네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컸었나보다.


메구로역에 내려서 한참을 걷고, 원래 살던 동네가 빈 공터였다가 큰 집이 지어진 것도 보고 골목 골목 잘 사는 집들이 있는 걸 새삼 알게되었고, 그 골목들 지나다가 '가쿠도우 클럽(방과후 교실 센터)'에도 들어가봤다. 페인트칠만 했나 싶을 정도로 그대로여서 놀랐고 그 공간 그대로에서 놀던 내가 그리웠다. 왜 그때의 기억을 좀더 담아두지 못했을까 아쉬웠다. 그렇게 행복한 일 투성이었는데 힘든 일도 지금와서는 다시 보고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다시 꼬불꼬불 잘 기억안나는 길을 내 감만으로 따라가며 초등학교를 찾아갔다. 학교는 그대로였고 거기서 문득 야나세 선생님이 궁금했다. 다행이도 2명의 선생님이 야나세 선생님에 대해서 알고 계셨고 어느 학교의 교장선생님으로 갔는지 알려주셨다. 학교를 나와 우리 집을 찾아가고 낫짱 집도 보고 유치원도 찾아갔다. 마키코 선생님과는 못만났어도 그 동네를 다시 느끼니까 행복했다.


가는 길에 '린시노 모리 숲공원'도 가고 밧줄타고 내려가는 레일도 탔다. 옛날에는 그렇게 빠르고 스릴 넘쳤는데 엄청 천천히 가더라. 신사에는 못가서 아쉬웠다. 다음에 가면 다시 가야지. 에리카 짱이 아리아케까지 와줘서 너무 고마웠다. 같이 수다떨고 사진도 찍고 더 멋지게 성장한 에리카짱은 빛나보여서 보기 좋았다. 야나세 선생님과 다시 만나서는 매우 놀랐다. 그때는 진짜 멋있고 키가 훤칠하다고 생각했는데 나랑 키가 비슷하고 눈가에 주름이나 검버섯도 많아서 놀랬다. 이게 20년 세월이구나 싶었다. 선생님이 선생님이 작곡하고 내가 불렀던 노래를 CD로 선물 줄 줄 꿈에도 몰랐다. 너무 고마워서 펑펑 울리기만 했다. 노래들으면서도 울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계속 울었다. 


이런 인연의 소중함이 너무 소중하다 싶었다. 다 같이 만나서 아이우에오리바바 연극 비디오도 보고 사진도 보고 노래도 다 같이 부르고 다 같이 얘기하고 싶다. 유치원 친구들이랑 마키코 선생님이랑 부모님들까지도 모시고 다 같이 보고 싶다. 이건 내가 35살이 되기 전에 이루고 싶다. 꼭 이룰거다.


미호코 짱이랑은 전화해서 만나고 싶었는데도 연락이 안되서 너무 안타까웠다. 토요일 오전 오후시간을 초등학교에 전화하고 마에다상에게 전화하고 마키코 센세에게 전화하고 전부 미호코짱 번호를 알고 싶어서 연락을 돌렸다. 전부 실패하고 포기하고 한국에 왔는데 도저히 포기가 안되는거다. 할 수 있을 때까지 하고 포기하자는 생각이 들어서 앨범뒤지다가 영화 신부들의 전쟁(Bride's War)이 보고 싶어졌다. 


영화를 보면서 미호코 짱이 생각났다. 눈물이 났다. 싸우고 다투고 질투하고 미워해도 사진 옆자리에는 미호코짱이 있었다. 신기했다. 지금도 미호코짱이 제일 보고 싶다. 자주 놀던거는 낫짱이나 에리카짱 마키랑 자주 놀았었는데 왜 그렇게 미호코짱이 생각나는걸까. 나에게 단짝이 미호코 짱일 수 있었나? 그것도 지금의 나의 욕심인가? 애기엄마가 된 미호코 짱이 너무 보고 싶고 그 애기인 히나짱도 분명히 미호코짱 닮아서 엄청 귀엽겠지. 유치원 앨범 뒤져서 집에 전화해보니까 다행이도 엄마가 계셨다. 미호코짱 번호 물어봐서 전화하고 싶었다. 미호코짱에게 먼저 물어봐야 된다고 하셔서 30분 이따가 전화를 다시 했다. 거절 당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다행이도 흔쾌히 알려주셔서 바로 전화를 해봤다. 


목소리, 맑고 카랑카랑한 소리를 들으니까 왈칵 눈물이 났다. 나는 늘 궁금했다. 내가 그렇게 질투하고 싸우고 그랬는데 중학교 때 연락받고 바로 만나준게 너무 신기했었다. 그 때도 약간 서먹해서 사진만 찍고 깊은 얘기를 못했던것 같다. 커서 어른이 되면 술이나 마시면서 내가 못되게 군거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게 이루어질지 별로 기대도 안했는데 성인이 된지 한참지난 지금에서야 그게 가능해졌다. 


내가 가족 다음으로 처음 만난 사회, 사람, 친구... 처음이고 도중에 헤어졌기 떄문에 더 아쉬운 걸까. 아니면 진짜 마음이 가기 때문인걸까. 기쁘다. 미안하다고, 이기적이고 못되서 미안하다고 하는 나의 말에 나는 착하고 바른 애였던 거라고 자기가 못되서 그런거라고 하고. 나의 편지 계속 가지고 있어줬고 편지 계속받았는데 자기가 안써서 되려 미안하다고 하고... 내가 다투고 질투해도 결국 제일 생각나는건 미호코짱이라고 했을때 자기도 그렇다고 해줘서 너무 고마웠고 눈물이 났다. 나만 혼자 도중에 전학가서 나만 혼자 그리워하는거고 오바하는걸까봐 조심스러웠다,


일본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까지 보태져서 괜히 너무 감정적이 되고 추억을 아름답게 포장한거일까봐 겁났다. 나는 너무 보고 싶어했는데 상대방이 떨떠름할까봐 겁났다. 내가 못가진 걸 가진 친구라 질투와 부러움이 이런 마음을 만들어낸 것인가 싶어 주춤하게 되었다. 그런데 전화선상의 목소리는 나를 반가워해주고 고마워해주는 밝은 미호코짱의 목소리였다. 기뻤다. 너무 기뻐서 눈물나서 말도 제대로 못했다. 꼭 보자는 약속은 예의상이 아니었다. 예의상이어도 상관없다. 내가 좋아하니까, 내가 좋으니까 만날거다.


행복하다.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겁날 정도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