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있었던 일이다.
평소에는 나에게 첫째를 준비시키면서 이것저것(머리만 묶어줄래, 뭐 좀 챙겨줄래 등등) 눈치주면서 날카로운 상태로 부탁하던 남편이 오늘은 왠일인지 그저 묵묵히 자신이 첫째아이 등원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매우 평화로운(평화롭다고 해서 여유부린다는 게 아니라 서로 날카로워져 있지 않은 집안 공기를 뜻한다) 아침 준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나서 얼마후 남편의 말 한마디로 그 이유에 대해 알게 되었다.
“너 약속늦겠다. 어여 나가.”
그렇다. 남편은 내가 오늘 오전에 외출한다는 걸 달력의 메모를 통해 알고 있었고 ‘10시~1시 홍대’라고 써있었기 때문에 9시가 되자 나에게 어서 출발하라고 얘기해준 것이다.
여기서 내가 의문이 생긴 건 약속이 있을 때와 없을 때가 남편의 마음에 ‘어떤’ 차이를 만들어냈냐는 것이다.
내가 약속이 안생긴다면 첫째의 아침준비는 ‘당연히’ 나의 몫이 된다. 남편이 ‘도와주는’ 입장이다보니 부탁받아서 하면서도 하기싫은 일을 하는 듯한 날카로움을 나는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약속이 있는 경우 남편은 그 상황을 자신이 ‘해야만’하는 상황으로 받아들인다. 내가 나갈채비를 해서 첫째 준비를 도와주지 못하더라도 짜증이 나지 않는다. 오히려 바쁜 와중에도 남편을 도와주면 고마워한다.
예전에는 약속이 있을 때도 눈치가 보였다. 눈치를 보는 나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나의 눈치보기는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사회적인 분위기가 한 몫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내가 일로 미팅을 나가니까 남편이 더욱 나의 약속에 대해 존중해준다. 하지만 단순히 친구와 수다떨러 나가도 눈치보지 않고 존중해주는 것도 당연시되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어느정도 든다.
그 어떤 약속이든 목적에 따라 소중하고 덜 소중한 것은 없을테니 말이다. 수다떨면서 중요한 사업얘기를 할 수도 있고 미팅을 하면서도 친목을 도모할 수 있다. 만날 상대의 시간 역시 무시해도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눠진 경우는 없다.
상황은 달라도 항상 마음가짐이 ‘서로’ 자기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상대에게 언제나 고마운 마음이 들지 않을까.
왜 우리는 육아는 엄마가 디폴트라는 인식이 있는걸까. 사회적 분위기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우리는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연습이 부족했고 대화하는 연습도 제대로 못한 채 어른이 되어 버렸다.
나는 이런 문제들이 남편 흉이나 시댁 흉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으면 한다. 나와 나의 가족,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의 건강한 이해심이 형상되는 기회로 생각하고 싶다. 우린 좀 더 건강한 대화를 하며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게으른 엄마의 행복한 아이교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정적인 감정 떨쳐 버리기 (0) | 2019.06.05 |
---|---|
일본에서의 추억 (0) | 2019.06.04 |
육아를 큰 틀로 이해하기 (0) | 2019.06.02 |
엄마, 내 마음을 읽어주세요 (0) | 2019.06.02 |
심플한 육아가 가능할까? (0) | 2019.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