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24 월 고3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서 패닉 신드롬 환자 마리아
- 어떡하지? 그녀는 손목시계를 쳐다 보았다. 동일한 축 주위를 돌아가는 두개의 바늘. 시간의 기준을 말해주지만 왜 인간이 고안해낸 다른 것들처럼 10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12를 택했는지 아무도 그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는 부조리한 메커니즘
- 좋다, 그녀가 고집과 결단력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치자. 그런 그녀가 지금 도달한 곳은? 공허, 완전한 고독, 빌레트(정신병원 명칭) 죽음의 앙티샹브르(불어로 대기실)
독서평설 '김춘수'시인에 대한 글 중에서
- 이름이 없는 상태 (무명)은 곧 존재를 둘러싼 어둠(무명)과도 같다.
언어영역 공기를 하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지문에서 머리를 얻어 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철학에 관한 글)
- 무엇인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우선 그것을 소유하고 있지 않을 때 가능하다. 사랑이란 무소유의 상태에서 어떤 것을 소유하고자 끊임없이 그것을 그리워하고 갈망할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 때의 나) 그렇다면 소유물에 대한 사랑은 집차기고 그것을 더 이상 사랑이라고 규정지을 수 없는 걸까. 인간은 이미 얻은 것은 뒤로 한 채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게 된다. 어째서일까. 왜 이런걸까 인간이란 동물은...
2005.2.6 일 고3
오랜만에 좋은 책 하나 건졌다. 책 소개에서 옮긴이가 괜히 이 책의 작가를 '책을 붙들기 무섭게 풍덩 빠져들게 만드는 마력의 작가!'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난 이런 글(최고의 작가! 눈을 못 떼게 하는 스토리 등등)을 보면 더 거부 반응이 생기곤 했다. 개나 소나 최고라고 떠드는 요즘 누가 최고인지도 분간이 안된다. 모두가 대단하고 천재면 독자들이 좋은 책을 고르는데 대체 뭘 믿어야 하는 것일까 의문이 생긴다. 내가 유일하게 가까운 마을문고에서조차 매번 실망하는 이유는 한국작가의 작품이 더 많아서다. 아직까지는 한국문학에 대해 흥미가 없어 빌리지 않고 있다.
유명한 외국작품이나 일본문학이라면 선뜻 집게 되는데 일본 문학은 마을문고에 소장되어 있는 양이 거의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다. 하긴 동네 마을문고가 커봤자지만...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지뭐...3개월마다 새 책이 들어온다는데 그걸 기다리는 수 밖에... 암튼 좋은 책에 목말라 탈수 지경에 이른 내게 소나기와도 같은 책이 온 것이다. 왜 진작에 빌리지 않았을까하고 자신을 탓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이 책을 집어 든 내가 대견하기까지 했다.
-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처럼 거북이가 한걸음 한걸음 열심히 앞으로 나갔기 떄문에 이긴 게 아니라 한걸음 함걸음 기어가는 모습을 토끼에게 들키지 않았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때의 나) 이 글을 읽으면 착잡하다. 마음 한구석이...
- 누군가가 나에게 의지할 때 사람들은 그걸 눈치 채지 못하는 게 아닐까,
- "넌 네가 아는 사토루밖에 모른다는 말이야. 마찬가지로 나는 내가 아는 사토루밖에 몰라. 그러니까 요스케나 고토도 그들이 아는 사토루밖에 모르는 건 당연한거야"
"도저히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모두가 알고 있는 사토루는 어디에도 없다는 뜻이야. 그런 사토루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어. 알겠어?"
- 단순히 그런 논리로 따지자면 '이 세계'가 모인 '이 세계들'에서는 누구나 주인공이 된다는 뜻이며, 누구나 주인공이라는 것은 결국 아무도 주인공이 아니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그것 역시 그런대로 평등한 세계같다는 생각이 들고 현재 우리 생활과 아주 가까운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아무도 주인공이 아닌 세계가 되기 위해서는 엄밀히 말하면 그 전에 역시 누군가 주인공인 이 세계가 필요하다. 으음...역시 뭔지 모르겠다.
그 때의 나) 나도 뭔지 모르겠다.
지금의 나) 나도...
- 미라이와 고토와 요스케와 사토루도 각기 다른 장소에 자신만의 방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말을 뒤집으면 곧 눈앞에 보이는 맨션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라는 뜻이 된다.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그 공상은 나를 무척이나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이 책을 거의 다 읽어 갈 즈음에 나는 생각치도 않았던 일이 일어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야기 사이 사이에 나오는 별 비중있게 다루지도 않을듯한(그렇지만 한 구석에서는 불안하기도 했던) '길목 여자 폭행 사건'은 단순히 어두운 과거가 있는 사토루의 짓이겠거니 했다. 뭔가 비밀에 둘러쌓인 사토루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것 역시 고정관념일 것이다. 암울한 과거 = 범죄 라는 생각은...) 그런데 늘 조깅을 하는 나오키가 나오는 대목을 아무 생각도 없이 읽어 내려가다가 (빨간 우산을 쓴 여자가 나왔을 떄도 전혀! 몰랐었다!) 시멘트로 여자의 얼굴을 여러 번 내리치는 부분에서 느낀 감정은 말로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다. 찬물을 갑자기 머리 위에 끼얹은 듯하면서도 누가 둔기로 내리 친듯한 기분. 아직까지도 이해하기 힘든 것은 (방금 그 대목을 읽어봤지만) 조깅을 하는 부분에서부터 여자의 얼굴에 끔찍한 상처를 가한 후에도 나오키의 심정에는 별 변화가 없이 담담하다는 것이다. 그저 주위의 풍경을 묘사하듯이... 나는 처음에는 나오키가 조깅을 할 때만 나오키 속의 다른 인격의 나오키가 일을 저질러 나오키 자신은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건 분명 아니다. 그럼 무엇때문에 그런 짓을 한 거지? 미사키와 헤어진 것때문에? 난 옆집 점술가가 얘기한 '나오키는 세계와 싸우고 있다. 그러나 그 밖에는 더 큰 세계가 있을 뿐이다'라는 말을 아직도 모르겠다. 그는 무엇과 싸우고 있는 것일까. 가장 믿음직스럽고 냉철하다고 생각한 나오키에 대해 점점 더 알 수 없게 되었다.
요스케는 착하고 마음이 여린 청년이라는 느낌밖에 없다. 근데 선배의 여자친구 집에서 아침을 먹을 때 왜 운거지? 사토루는 말투에서만 봐도 차갑고 진짜 자신을 내보이지 않는다는 면이 왠지 'NANA'의 '신'같았다. 모두를 '친구놀이 하는 인간들','이 집에서 만나지 않았더라면 절대 말도 걸고 싶지 않았을 타입의 인간들'이라고 생각하지만 사토루는 이미 그들과 함께 있는 게 즐거워 견딜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고토는 외모도 예쁘고 낙천적인 성격에 요스케나 사토루 모두 그녀를 따른다는 점이 마냥 부러운 인물이다. 가장 닮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만 옛남자 전화를 하루종일 기다리는 모습은 내가 가장 혐오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다리는 모습에서조차 매달리는 여자의 전형적인 스타일이 아닌 뭔가 그녀만의 자유분방하고 남들과 다른 듯한 모습에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미라이는 처음에 읽으면서 여러가지 어려운 생각을 하다가 '음~어렵다'라는 말을 하는 부분에서 왠지 나와 비슷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애써 부정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렇지만 뒤로 갈 수록 나와는 정말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것 역시 스스로 부정하는건가 싶다.
요시다 슈이치라는 작가를 알게 된 이 책에서 단 한가지 마음에 안드는 점은 '퍼레이드'라는 제목이다. 확 느낌이 오지 않는다. 약간 제목에서 아쉬움이 남지만 오랜만에 훌륭한 책을 읽었다는 감동은 변함없이다.
읽고 싶은 책
최후의 아들, 열목어, 파크 라이프(요시다 슈이치)
빵가게 재습격, 무라카미 라디오, 고흐가 왜 귀를 잘랐는지 아는가, 오디션, 질투의 향기, 천국까지 100마일, 토토의 새로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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